강남 32억, 비강남 10억···서울 집값, 빈부격차 현실로
22년간 집값 4배 상승, 내 집 마련 기간은 두 배 늘어 정권마다 쏟아진 대책, 현실은 더 깊어진 불평등 정책에도 막지 못한 양극화···주거 사다리 붕괴 경고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 집값이 22년간 4배 넘게 오르고 강남과 비강남의 격차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새 정부에 공급 체계 개편과 대출 관리 등 구조적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가 2003년부터 올해 5월까지 서울 25개 자치구 내 대단지 75개 단지를 대상으로 30평형 기준 아파트 시세 변동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3년 이후 서울 아파트값은 4.3배 올랐다. 2003년 평균 3억원이던 30평형 아파트 시세는 올해 12억원을 넘어섰다.
정권별로 보면 노무현 정부 시기(2003~2008년) 서울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2003년 2월 서울 아파트의 평균 시세는 30평형 기준 3억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임기 말인 2008년에는 5억3000만원으로 약 80%(2억3000만원) 상승했다. 당시 부동산 시장에는 강남 재건축과 분양가 상승 기대가 번졌고, 저금리 기조까지 맞물리면서 가격이 본격적으로 뛰었다. 내 집 마련 기간은 16년에서 24년으로 늘어나며 실수요자 부담이 가중됐다.
경실련은 “노무현 정부 시기에 부동산 규제 신호와 공급 불확실성이 맞물려 상승세에 불을 붙였다”고 평가했다.
이명박 정부(2008~2013년)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집값이 소폭 하락했다. 평균 시세는 5억3000만원에서 4억8000만원으로 5000만원(약 –10%) 떨어졌다. 당시 금융위기 영향으로 강남 재건축 중심 거래가 위축되고 매수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경실련은 이 시기를 유일하게 집값이 내려간 시기로 평가했다. 다만 전세가격은 같은 기간 상승세를 이어갔다. 경실련은 “매매 가격은 조정됐지만 주거비용 전체는 오히려 줄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내 집 마련 기간은 이 시기에 24년에서 18년으로 다소 줄어들었다.
박근혜 정부(2013~2017년) 들어서는 가격이 서서히 오름세로 돌아섰다. 평균 시세는 4억8000만원에서 5억8000만원으로 약 21%(1억원) 증가했다. 저금리 기조와 함께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제, 전세자금 대출 확대 등의 정책이 시행되면서 매매·전세 시장 모두 거래량이 늘었다. 이때부터 자본 갭투기 기반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도 있다. 내 집 마련 기간은 19년으로 다시 소폭 늘어났다.
문재인 정부(2017~2022년) 들어 서울 집값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 평균 시세는 5억8000만원에서 12억6000만원으로 6억8000만원(119%) 뛰어 2배 이상 올랐다. 정부는 임기 동안 25차례에 걸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전세자금 대출 확대와 임대사업자 혜택이 계속 유지·확대되면서 갭투기 수요가 크게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25차례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갭투기 수요가 늘어난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실효성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한다”며 “전세자금 대출 확대와 임대사업자 혜택이 의도와 달리 투기 수요를 부추긴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해당 시기엔 2030대의 ‘영끌’ 매수가 시장을 달궜다. 내 집 마련 기간은 사상 최장인 33년으로 늘어나, 평균 임금으로도 평생 주택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에 놓였다. 경실련은 “단편적 대책과 조세·금융 규제가 혼재해 정책 신뢰를 떨어뜨렸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정부에선 집값 상승폭이 다소 줄었지만 강남과 비강남의 격차는 오히려 역대 최대치로 벌어졌다. 평균 시세는 12억6000만원에서 12억8000만원으로 소폭 상승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 기준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평균 시세는 32억3000만원으로, 비강남 지역 10억2000만원보다 22억 이상 높았다. 같은 면적 아파트임에도 가격이 3배 이상 차이났다. 경실련은 “윤 정부에서 집값은 안정된 듯 보였지만 격차는 더 고착화됐다”며 “내 집 마련 기간은 32년으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3배 이상의 가격 차이는 단순한 지역 프리미엄을 넘어선 수준이다”며 “ 이는 교육, 인프라, 투자 가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이런 격차가 고착화되면 사회적 이동성(개인이 노력으로 계층을 상승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업계와 시민단체는 단편적 대책보다는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내집마련 기간이 30년을 넘어선 상황에서 실수요자를 위한 근본적 해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정흔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은 “정권별로 수십 차례 대책이 쏟아졌지만 실효성이 부족했고 정책이 단편적이었다”며 “새 정부는 공급 체계와 세제 개편, 가계대출 관리 등 구조적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지금의 격차와 부담이 방치되면 실수요자의 주거 사다리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며 “금리 인하 기대와 투자 심리가 다시 살아나면 상승세는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