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산업안정기금' 족쇄 푸는 제주항공···계열 지원 나서나
내달 1일 기간산업안정기금 잔액 364억원 중도상환 계열사 지원·주주배당 가능해져, 엔데믹 후 유동성은 확보 애경그룹, 모태기업 매각 등 재편 분투···제주항공 역할 대두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제주항공이 계열사 지원 금지 등 경영활동 일부 제한 조건이 걸려 있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중도상환한다. 모그룹 사업 재편의 중심에 서서 자금조달 등 관련 방안들을 다각도로 고심하는 모양새다.
24일 현재 제주항공은 내달 1일 기간산업안정기금 잔액 364억원을 중도상환하기 위한 금융기관 차입을 진행 중이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은 코로나19 창궐 이후인 2020년 항공운송업, 해상운송업 등 기간 산업 내 기업들의 경영난 극복, 고용 안정 등을 위해 마련된 자금이다. 이를 차입하는 형식으로 지원받는 기업은 계열사 지원, 주주 배당, 자사주 매입 등이 금지된다. 지원 시점 직전년도에 연봉 2억원 이상 수령한 임직원 보수도 동결해야 한다.
제주항공은 2020년 12월 321억원, 2021년 12월 1500억원 등 1821억원을 지원받았다. 2023년 5월 한국 정부가 코로나19 풍토병화(엔데믹)를 선언하기 전후 항공 운송 수요가 회복되기 시작했고, 제주항공은 영업활동으로 이윤을 창출하거나 별도 차입을 단행해 유동성을 확보한 후 기금을 점진적으로 상환해나갔다.
제주항공이 추가 차입을 통해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상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주항공은 주식전환사채인 해당 기금 잔액을 이달 안에 상환하지 않으면 금리가 크게 인상되는 점을 고려해 중도상환을 서두른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에 따르면 제주항공이 중도상환할 기간산업안정기금 잔액은 만기 이후 주식으로 전환되는 사채(CB)다. 이달 말 우선매수청구권(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대출금리 3%p 가까이 오른다. 제주항공이 최근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결정이 이뤄진 가운데 상환 부담을 덜기 위해 대출 갈아타기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 정책자금 상환하면 계열사 지원 가능
제주항공은 기금을 모두 상환한 후 각종 경영상 제약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제주항공은 기금을 상환한 후 모회사, 자회사 등 애경그룹 내 계열사를 지원하거나 주주 배당을 실시할 수 있다.
제주항공은 계열사를 지원할 자금 여력을 이미 확보한 것으로 분석된다. 제주항공이 지난 1분기말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전년동기 대비 21.2% 증가한 2301억원이다. 매출 규모가 비슷한 애경케미칼이 같은 시점 보유한 666억원보다 훨씬 크다.
제주항공은 최근 시장 경쟁 격화, 사세 확장 등으로 인해 투자를 확대함에 따라 지난 1분기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항공 서비스 수요가 이어져 양호한 현금 흐름을 유지 중이다. 이에 따라 유사시 계열사를 지원할 여지를 확보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창사 이후 계열사나 해외 법인에 대여, 보증 등을 일절 수행하지 않았다.
제주항공이 경영 활동을 제약없이 펼칠 수 있는 점은 애경그룹의 사업 재편 과정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애경그룹은 제주항공을 중심으로 그룹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기 위해 최근 계열사, 자산 매각을 추진 중이다. 그룹 지주사 AK홀딩스는 계열사에 채무 보증 등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동안 부채율이 늘고 영업손실이 커졌다.
애경그룹은 사업 재편 일환으로 그룹 모태 기업인 화장품·생활용품 업체 애경산업을 인수합병(M&A) 시장에 내놓았다. 인수가는 6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애경산업은 지난 1분기 매출액,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두자리수로 감소하는 등 부진을 겪고 있다.
지난 20일엔 계열사 애경케미칼이 지분 100%를 보유 중인 애경중부컨트리클럽(CC)이 운영하던 경기 광주시 소재 골프장 중부CC를 유한회사 시에나서울컨트리클럽에 1690억원 규모로 매각했다. 중부CC는 작년 기준 영업이익 18억원을 기록하는 등 정상 운영돼왔다.
화학, 바이오 사업을 전개 중인 모회사 애경케미칼은 전년 대비 감소한 실적을 기록해 연구개발비 등 성장 동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매각을 결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외 계열사들도 적자를 기록하거나 큰 부채를 떠안아 유동성 지원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룹 사업 재편에 관한 제주항공 역할이 대두되는 분위기다.
◇ 7년만에 배당 재개할 수도
제주항공이 코로나19 창궐 후 처음 주주 배당을 실시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제주항공은 AK홀딩스(50.37%), 국민연금공단(5.05%), 애경자산관리(3.22%)를 주요 주주로 두고 있다. AK홀딩스가 제주항공 배당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 지분을 보유한 AK홀딩스는 순수지주사로서 별도 사업을 전개하지 않고 계열사 배당금으로 매출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제주항공 배당은 AK홀딩스 실적 개선에 도움될 전망이다. 제주항공은 2019년 2월 보통주 1주당 650원 규모로 실시한 결산배당을 마지막으로 6년 연속 주주에게 배당하지 못했다. 연 1회 실시해온 결산배당을 7년 만인 내년 초 실시할 여지가 존재한단 관측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기간산업안정기금 상환을 위한 차입에 관한 내용은 해당 공시를 통해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