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관심으로 채운 도쿄 여행 지도

2025-06-19     Living sense

 

취향이 이끄는 도쿄 여행

공예와 차, 박물관과 정원. 지극히 사적인 관심으로 채운 도쿄 여행 지도를 공유한다.

 Taste 1_Craft 

로에베의〈크래프티드 월드〉전시에서 만난 정다혜 작가의 말총 조명과 이영순 작가의 작품. 

세상의 빠른 속도에 지치고 겁이 날 때면, 마치 수행하듯 자신만의 속도로 반복 작업하며 만들어지는 공예로부터 위안을 얻었다. 특히 작가의 손을 통해 전해지는 공예의 온기를 좋아했는데, 이번 도쿄 여행의 계기가 된 첫 번째 취향도 바로 ‘공예’다.평소 좋아하던 섬유공예가 최희주 작가의 첫 번째 도쿄 개인전을 관람하고 응원하기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 시로가네에 위치한 ‘야에카 홈 스토어 YAEKA Home store’에서 열린 최희주 작가의 개인전. 작가의 어머니께서 60년 전에 지은 광목 이불보에 달을 띄우고 한산모시에 산 능선을 수놓자, 산이 없는 도쿄 지역 관람객들은 마치 명상하듯 작품을 고요하게 즐겼다. 이번 전시 덕분에 관광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하고 품격 있는 동네인 시로가네와 오래된 고급 주택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야에카 홈 스토어를 알게 된 것도 뜻깊다.다음 공예 스폿은 패션 편집숍 ‘타바야 유나이티드 애로우즈 TABAYA United Arrows’의 하라주쿠 본점이다. 공간 리뉴얼 후 마련한 갤러리의 개관 전시에 한국 공예가 7인이 함께했기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전시 〈UNITED in WHITE〉에는 조선백자를 연구하며 백자 작업을 하는 이정용, 박성극, 김상인, 홍두현, 전상근 작가와 유리공예를 하는 김동희 작가, 패브릭 작업을 하는 김수연 작가가 참여했다.

야에카 홈 스토어에서 열린 최희주 작가의 개인전. 

공예는 디지털 시대의 해독제라고 말한 조나단 앤더슨이 로에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한 지난 10년간의 여정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전시 〈크래프티드 월드〉에도 한국 공예 작품을 만나기 위해 방문했다. 말총을 엮은 바구니 작품으로 2022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우수상을 거머쥔 정다혜 작가는 말총 작업으로 조명을 선보였고, 한지를 꼬아서 엮는 지승 공예가 이영순 작가의 지승 항아리에 로에베 가죽 공예가 손잡이로 더해진 가방과의 조우도 뭉클했다.

야에카 홈 스토어 4-7-10 Shirokane Minato-ku, Tokyo
타바야 유나이티드 애로우즈 3 Chome−28−1 Jingumae Shibuya, Tokyo


Taste 2_Tea 

공간을 채우는 주전자와 그릇, 잔 등 보는 재미가 있는 히가시야 긴자. 
시시리의 봄 시즌 메뉴인 벚꽃떡.

뚜껑이 달린 다기 중 하나인 개완에 반해 차를 마시는 일상을 즐긴 지 8년 차. 특정한 지역의 차를 편애하지 않고 한국 녹차, 중국 보이차와 청차, 일본 호지차와 녹차 등을 두루 좋아한다. 날씨와 계절, 때로는 기분에 따라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어서다.
차 애호가로서 도쿄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 차 문화의 역사가 깊고 다도를 예술의 경지로 이어온 그들의 차를 경험하고 싶었다. 다만 전통 다도보다는 현대적 감각을 더한 티숍을 위주로 탐색했다.
먼저 소개할 곳은 홋카이도 자연과 계절의 풍류를 화과자로 표현한 다식을 차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시시리(Sisiri)다. 시로가네와 에비수 사이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이곳은 주말에만 영업을 하는데, 마침 숙소가 근처라 토요일 오전에 달려가 운 좋게 경험할 수 있었다. 아직은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도쿄 주민들이 조용히 담소를 나누고 있어서 다정한 환대와 정성스럽게 디자인한 메뉴를 가만가만 누릴 수 있었다. 봄 계절 메뉴인 벚꽃떡과 이곳의 대표 메뉴인 눈꽃떡이 인상 깊었다.
일본 전통 디저트인 와가시(wagashi)와 섬세하게 선별한 차를 소개하는 히가시야 긴자(Higashiya Ginza)도 만족스러운 시간을 선사했다. 이솝 교토와 안다즈 호텔 등을 작업한 일본 디자인 회사인 심플리시티가 운영하고, 디자이너 오가타 신이치로가 만든 곳으로, 공간의 미감과 구성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물을 끓이는 주전자와 그릇, 잔 하나하나까지 살펴보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마찬가지로 오가타 신이치로가 기획해 도쿄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는 차 브랜드 사보에(Saboe)의 아자부다이 힐스 매장도 기억에 오래 머문다.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차를 블렌딩해 10가지가 넘는 다양한 메뉴를 소개하고, 찻잔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패키지도 흥미롭다. 미니멀한 차 공간을 연출하는 방식도 엿볼 수 있는 곳이랄까. 직접 시음한 뒤 구입할 수 있어 선물로도 제격이다.

시시리 3-38-25 Shoinjinjamae Satagaya, Tokyo
히가시야 긴자 1 Chome−7−7 Ginza Chuo City, Tokyo
사보에 1 Chome−2−4 Azabudai Minato City, Tokyo


Taste 3_Museum

세계 각국의 공예품을 볼 수 있는 일본민예관.

2년 전부터 대학원에서 문화유산의 활용에 대한 공부를 해온 터라, 이번 여행에서 도쿄 곳곳에 자리 잡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빼놓을 수 없었다.
가장 기대했고 오랜 시간 머물렀던 곳은 일본민예관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 공예와 예술에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기울였던 일본 미학자이자 민예운동가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세계 각국의 공예품을 전시하기 위해 1936년에 설립한 박물관이다. 그는 “일본의 문명이 조선의 미를 통해 태어났다는 사실만은 불변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조선과 일본의 공예품을 수집해, 두 나라의 생활 미감을 비교하며 꼼꼼히 살펴볼 수 있다. 도쿄도가 지정한 유형문화재인 건물은 일본 전통 건축과 근대 건축양식을 접목한 목조 건축으로, 그 압도적인 구조미가 인상 깊다.

일본 최대 규모 전시 공간인 국립신미술관.

롯폰기 지역에서는 국립신미술관을 선택했다. 소장품이 없는 대신 일본 최대 규모의 전시 공간에서 다양한 기획전을 선보이는데다, 미술관 건물 자체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건물 전면에는 파도처럼 물결치는 곡선의 유리 커튼월이 설치되어 있어, 햇살이 내부로 쏟아져 들어온다. 탁 트인 로비에는 한스 웨그너의 ‘Y체어’, 아르네 야곱센의 ‘스완 체어’, ‘세븐 체어’ 등이 배치되어 아오야마공원의 풍경을 감상하기 좋다. 현재 열리고 있는 기획전 〈리빙 모더니티〉는 1920~70년대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주택 프로젝트를 다룬 전시로, 6월 30일까지 이어진다.

이후 일정에는 없었지만 우연히 마주친 호류지보물관에서는 건축이 주는 깊은 위안을 경험했다. 이곳은 일본 나라에 있는 사찰 호류지가 1878년에 봉납한 300여 점의 보물을 위한 수장고형 박물관으로, 1999년 건축가 다나구치 요시오에 의해 리뉴얼되었다. 호류지가 백제와 인연이 깊었던 만큼, 삼국시대 유물 등 우리 선조들의 손길이 닿은 불상도 감상할 수 있다.

일본민예관 4 Chome-3-33 Komaba Meguro City, Tokyo
국립신미술관 7 Chome-22-2 Roppongi Minato City, Tokyo
호류지보물관 13-9 Uenokoen, Taito City, Tokyo


Taste 4_Garden

일본식 정원과 아르데코 양식으로 지어져 산책하며 즐기기 좋은 도쿄도 정원 미술관.
광활하고 울창한 정원을 품은 에도도쿄건축공원.

화사한 벚꽃 시즌이 끝난 도쿄의 정원은 초록 잎으로 더욱 깊어졌고, 사람들은 나무 아래에서 진한 고요를 누렸다. 도쿄 여행에서 정원을 테마로 선택한 이유는 구글맵 지도를 보면서 숙소 근처에 있던 커다란 초록색 대지를 보고서다. 탐방할 곳들이 문을 열기 전에 아침 산책을 즐겨볼 마음으로 처음 나선 곳은 시로가네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던 ‘도쿄도 정원 미술관(Tokyo Metropolitan Teien Art Museum)’이다. 일본 황족인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가 1930년 프랑스에서 귀국하며 거주할 곳으로 지은 저택과 정원으로 구성된 이곳은, 근대 아르데코 양식 건축과 다양한 정원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다. 왕자가 사용했던 일본 전통 다실과 일본식 정원, 산책하기 좋은 서양 정원, 조각 작품이 놓인 드넓은 잔디밭 등을 돌아보느라 아침 산책이 길어졌다.
도쿄 도심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고가네이에 위치한 ‘에도도쿄건축공원’은 기치조지와 묶어서 다녀왔다. 상점들이 문을 열기 전에 잠시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광활하고 울창한 정원에 반하고 에도와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보느라 혼이 나갔다. 문화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들을 이전해 마을 형태로 꾸며, 전통 가옥은 물론 근대 건축가의 집과 장식 요소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에서 근무했던 일본 근대 건축가 마에카와 쿠니오의 자택은 동서양의 근대 건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간으로 가장 인기가 높았다.

일본식 정원을 느낄 수 있는 히고 호소카와 정원.

도쿄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산책으로 ‘히고 호소카와 정원’을 거닐었다. 세 번째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어 지도만 보고 찾은 이곳은, 연못과 섬세한 조경으로 꾸며진 일본식 정원으로 한 바퀴 천천히 도는 데 20분 정도 걸릴 만큼 꽤 큰 규모다. 에도 시대 말기 구마모토 번주 호소카와의 별장이었던 곳으로, 사무라이들이 정원을 경쟁적으로 소유하려 했던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이를 다이묘 정원이라고 하는데, 현재 도쿄의 공원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고 도쿄 곳곳을 푸르게 채우고 있다.

도쿄도 정원 미술관 5 Chome-21-9 Shirokanedai Minato City, Tokyo
에도도쿄건축공원 3 Chome−7−1 Sakuracho Koganei, Tokyo
히고 호소카와 정원 1 Chome-1-22 Mejirodai Bunkyo City, Tokyo


CREDIT INFO

editor    심효진
words    박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