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 텃밭 흔들···중동 리스크에 떠는 건설사
올 1~5월 중동 수주 56억4174달러···전년 대비 40% 이상 급감 국내 건설사 이스라엘·이란 진출 사실상 없지만 주변국 정세불안은 타격 불가피 확전 등 지속 여부 따라 수익성 악화 및 공기지연, 신규 발주 감소 우려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무력 충돌의 수위가 한층 높아지면서 국내 건설사들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양국 충돌이 격화할 경우 중동지역에서 진행 중인 공사현장을 제대로 실행하기 어려워져서다.
원유, 철강을 비롯한 원자재 가격 급등도 부담 요소다. 대형 해외 건설 프로젝트는 5년 이상 걸리는 만큼, 정치적 불안에 따른 여파로 발주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이 지난 13일부터 나흘째 지속되면서 국내 건설업계가 중동지역 정세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이스라엘이 이란 수도 테헤란 한복판을 폭격한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이란도 이스라엘 주요 도시를 향해 미사일을 쏘며 보복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과 군사기지, 에너지 기반 시설 등을 공급 대상으로 삼았고, 그 결과 이란 남부의 최대 가스전에서는 대형 폭발과 화재가 발생했다. 이란의 반격에 이스라엘 북부 역시 전력공급 문제가 생겼다.
양국 간 충돌이 사흘째 이어지면서 민간 사상자가 늘고 있지만 양측 모두 당장 물러설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이란 정부는 공습경보가 울리면 지하철역, 모스크, 학교 등으로 대피하라는 시민 행동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그동안은 공습 발생에도 대피요령을 내린 바 없었던 점에 미루어봤을 때 양국 간 충돌 장기화를 염두에 둔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중동지역 정세 불안은 국내 건설사까지 긴장시키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건설사가 이스라엘과 이란에서 공사를 현재 수주해 진행하는 사업은 없다. 해건협 관계자는 “국교도 단절된 상태인 이스라엘은 국내 건설업계의 불모지로 인식되고 이란도 진출이 원할한 시장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중동에서 확전 양상이 벌어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주변국까지 정세가 불안해지며 국내 기업의 공사 진행이 원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지난해 국내 건설업계의 해외건설 수주 371억달러 가운데 중동 비중이 절반에 달하는 184억9000만달러였을 정도로 중동은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수주 텃밭으로 인식된다.
올해 들어서는 중동의 수주액이 지난해 1~5월 100억달러(13조원)에서 올해 56억달러(7조6300억원)로 대폭 줄었다. 중동의 대표적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수요 부진으로 경제 사정이 악화한 탓에 보수적 재정 기조를 유지하며 대형 프로젝트 역시 감소한 영향이다.
앞으로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 다가올 2029년 네옴 동계 아시안게임, 2030년 리야드 엑스포 등 대형 국제행사를 준비로 인해 당분간 큰 규모의 사업 발주가 줄어들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은 국내 건설사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가뜩이나 저유가 여파로 중동 발주가 줄어들면서 국내 건설업계의 해외수주 성과가 미미한데 정세 악화까지 추가되면서 수주 실적이 주저앉을 우려가 커진 것이다.
수주 총액만 감소하는 게 아니다. 기존에 확보해 둔 일감의 수익성도 떨어진다. 군사적 충돌로 당장 원유생산 시설이 파괴되지 않더라도 원유 공급 차질에 대한 시장 불안감, 분쟁지역을 지나는 유조선의 보험료 급등, 안전을 위해 운항을 기피하는 현상 등이 맞물리며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 건설자재 운반 비용 인상과 건자재 수급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최악의 경우 수급이 어려워지면 발주처와 약속한 공사 기간을 지키지 못하며 지체보상금을 물어야 할 가능성도 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은 작년 4월과 10월에도 있었지만 단기에 종료되지 않았나. 이번엔 일어난 지 나흘밖에 안됐기 때문에 섣불리 영향을 말하기는 어렵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사들은 연 단위로 건자재를 계약하기 때문에 단기에 그치면 큰 영향은 없다. 결국 지속성, 확전 여부에 따라 국내 건설사업자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동 정세 불안은 국내 건설사들이 올 하반기 해외보다 국내 수주에 더 비중을 두는 배경이 될 수도 있다. 특히 국내 주요 건설사들은 서울의 사실상 유일한 주택공급책인 정비사업 수주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국내 건설 수주액은 점진적 금리하락과 정부의 주택공급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대비 약 2% 증가한 210조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