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이 담합 주도”···‘2년 입찰제한 적법’ 판결문 보니
담합 혐의로 2년 입찰 제한, 불복 행정소송서 패소 경쟁제한성 발생, 담합 주도 인정···재량권 일탈·남용도 아냐 회사 항소로 2심 이어져···재차 집행정지 신청할 듯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조달청이 발주한 관수철근 연간 단가계약 입찰에서 수조원대 담합을 한 이유로 현대제철에 부과된 24개월(2년)의 입찰제한 처분은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국내 총 생산량의 99%를 차지하는 철강사들의 답합으로 ‘경쟁제한성’이 생겼으며, 그중 ‘담합을 주도’해 낙찰을 받은 현대제철에게 가장 중한 수준의 처분을 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16일 시사저널e가 확보한 현대제철이 조달청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부정당업자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 취소청구)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최근 이 같은 이유로 현대제철의 청구를 기각했다.
향후 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된다면 공공입찰에서 현대제철의 영업은 2년간 제한된다. 올해 5월 제출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제철이 조달청을 거래처로 하는 수주상황은 수량 49만1000t, 수주총액은 4252억 원에 이른다.
1심에서 패소한 현대제철은 항소를 통해 법정 다툼을 이어간다.
[사실관계]
조달청은 관수철근의 조달을 위해 정기적으로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에 의한 철근 연간단가계약 입찰을 실시해 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2년 11월8일 현대제철을 포함한 11개 제강사들이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조달청이 발주한 철근 연간단가계약 입찰에 참여하면서 사전에 낙찰물량을 배분하거나 투찰가격을 합의하는 등 담합에 해당하는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부과 등의 제재를 했다. 담합 규모는 계약금기준 6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후 조달청은 2023년 1월26일 ‘현대제철이 2017년, 2018년 철근 연간단가계약 입찰에 참여하면서, 사전에 낙찰물량을 배분하고 투찰가격을 결정해 담합을 주도해 낙찰을 받은 자에 해당’한다며 2년의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했다.
[인정사실]
철근시장은 크게 국내시장과 수입시장으로 나뉘고, 국내시장은 민수시장과 관수시장으로 나뉜다. 민수시장은 건설사, 유통사 등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시장을 의미하고 관수시장은 조달청을 통한 관급공사에 판매되는 시장을 의미한다. 현대제철을 포함한 제강사들은 2019년 기준 철근 생산능력이 국내 총 생산능력 대비 약 92.2%이고, 생산량에 따른 실제 시장점유율은 99%에 달한다. 철근 관수가격은 조달청이 실시하는 철근 연간단가계약 입찰을 통해서 결정된다.
현대제철을 포함한 사업자들은 2012년 이전부터 관수철근 입찰에 참여하면서 ‘입찰 전 모임’을 통해 ▲각 회사별 낙찰물량을 배분하고 ▲투찰가격도 협의해 정하기로 합의한 후 그대로 투찰하는 등 답함을 매년 실행해 왔다.
이 사건 제재 대상인 2017년 사업자들은 총 입찰물량 130만t 중 129만7000t을 희망수량으로 투찰했고, 12만9500t을 낙찰받았다. 일부를 제외한 사업자들 대부분 투찰한 물량을 그대로 낙찰받은 것이고, 투찰율은 99.77~99.91%에 이른다. 2018년에는 총 입찰물량 260만t 중 259만1000t을 희망수량으로 투찰해 259만3500t을 낙찰받았는데, 투찰율은 98.89%~99.77%에 이른다.
[관련 형사판결 및 행정사건]
이 사건 담합으로 현대제철 법인과 현대제철 임직원인 전 사장, 전 영업본부장, 전 건설강재사업부장, 전 철근영업실장, 전 철근관수팀 팀장, 직원 등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2023년 6월19일 1심에서 공소사실 대부분이 유죄로 인정돼 현대제철 법인은 벌금 2억원을, 임직원들은 징역형의 또는 벌금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형사 사건은 2023년 12월14일 그대로 확정됐다.
현대제철은 2023년 3월9일 서울고법에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이 사건 담합은 경쟁제한성이 없고, 과징금 액수 산정도 부당하다’는 취지로 주장하며 행정소송(시정명령 및 과징금납부명령 취소청구)도 제기했다. 그러나 서울고법 재판부는 2024년 7월25일 현대제철의 청구를 기각했고, 대법원도 지난해 12월12일 상고를 기각했다.
[현대제철 주장]
현대제철은 조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총 3가지 주장을 펼쳤다.
먼저 조달청은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으로 관수철근 입찰을 실시하면서 최저가 동의제를 결’시켰는데, 이는 관수철근의 수급가격에 관한 불평등 및 수급 혼란을 방지하고자 하는 ‘행정편의’를 위한 것으로, 국가계약법상 그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 담합이 조달청의 부당한 입찰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사업자들의 행위에는 경쟁제한성이 없고 오히려 효율성이 증대됐다는 것이다.
둘째 담합이 인정된다하더라도 조달청은 현대제철이 ‘담합을 주도해 낙찰을 받은 자’에 해당한다고 보아 처분을 했는데, 현대제철은 담합을 주도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조달청은 이 사건 입찰의 특수성과 원고의 감경 사유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사건 처분을 했으므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는 주장도 펼쳤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현대제철의 주장을 모두 물리치고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사전에 물량을 배분하고 투찰 가격을 협의함으로써 경쟁을 감소시켜 가격·수량 기타 거래조건 등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했다”면서 “이는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로서 담합에 해당한다”라고 밝혔다. 특히 “경쟁의 핵심 요소인 가격을 통제하려하고 물량배분까지 합의했는데, 이러한 입찰담합은 경성(硬性)공동행위 중에서도 가장 위법성이 강하다”라고 꼬집었다.
이 사건 담합이 조달청의 입찰 관행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러한 입찰담합은 원칙적으로 위법하고, 입찰의 특수한 방식이 다소 영향을 주었더라도 달리 볼 수 없다”라고 했다.
재판부는 현대제철이 이 사건 담합을 주도했다고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관련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 사건 담합을 전체적으로 주도하면서 담합 참여업체간의 이익을 조율하고 유지시키는 것은 주로 원고의 역할이었다”면서 “원고가 이 사건 담합에서 경쟁을 제한하거나 배제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주도적으로 제시하여 관련자의 참여와 동조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함으로써 담합을 주도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판단했다.
현대제철의 고위직 임원이 이 사건 담합에 직접 관여한 점, 현대제철이 우리나라 철근 시장에서 약 3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업계 1위 제강사의 지위를 갖고 있는 점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2년의 제재가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과도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 사건 담합은 2018년 기준 철근 생산능력이 국내 총 철근 생산능력 대비 약92%, 생산량에 따른 시장점유율이 약 99%에 달하는 우리나라 7대 제강사들이 압연사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차례에 걸쳐 계약금액 기준으로 합계 약 6조6481억원 규모의 관수철근 입찰에 참여하며 투찰가격과 물량배분을 합의한 것이다”면서 “그 성질상 효율성 증대 효과는 없고 사업자들간의 자유로운 가격경쟁을 억제하는 경쟁제한 효과만 발생시키는 경성공동행위에 해당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건 처분의 대상이 된 2017년, 2018년만 놓고 보더라도 현대제철을 비롯한 제강사들의 담합 가액은 약 2조7000억원에 달하고, 원고는 그중 30%에 해당하는 물량을 낙찰 받았다”면서 “국가계약법이 ‘담합을 주도해 낙찰을 받은 자’에 대한 제재기한을 2년으로 정하고 있고, (중략) 원고가 이 사건 담합에 관여한 정도, 낙찰받은 관수철근의 규모와 이득액, 담합에 참여한 타사에도 2년의 입찰제한 처분이 내려진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처분이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거나 남용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라고 판시했다.
[향후 절차 및 영향]
이번 판결로 현대제철의 관수철근 입찰이 당장 제한되지는 않는다. 현대제철은 지난 2023년 1월 이번 행정소송을 제기함과 동시에 집행정지를 신청해 인용 판결을 받아냈다. 현대제철은 지난 13일 항소했는데, 2심에서도 재차 집행정지를 통해 조달청 제재의 효력을 정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