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PC 전면 폐지 피했다···K배터리 ‘숨 고르기’
감세법안 하원 통과···보조금 2031년까지 “최악은 피했다”···美 투자 전략 유지 가능 中 배제 명문화···소재 ‘반사이익’ 기대 제3자 판매 조건 유예, 유동성 확보 이상 無 상원 통과는 불확실···재정적자 변수 여전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감세법안이 미국 하원을 통과하며 국내 배터리 업계가 숨을 돌렸다. 업계가 우려하던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는 조기 종료 대신 단 1년 앞당겨진 일몰 시점을 맞으며 ‘생존’했다. 글로벌 전기차 수요가 정체된 가운데 업계 실적을 떠받쳐 온 세액공제가 유지된 것이다.
22일(현지시간) 미국 하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이 공동 발의한 감세법안을 찬성 215표, 반대 214표로 가결했다. 트럼프가 ‘크고 아름다운 법안’이라 부른 이 조세 개혁안에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제혜택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조항이 담겼다.
그러나 핵심 쟁점이었던 AMPC는 현행 구조가 대부분 유지됐다. AMPC는 미국 내에서 배터리 셀과 모듈을 생산하면 1kWh당 최대 45달러를 세액공제로 환급해주는 제도다.
그간 일부 외신은 2028년 조기 종료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하원 통과안에는 2031년 말 종료로 명시됐다. 기존 2032년 일몰 구조에서 단 1년 앞당겨진 셈이다. 현행법상으로도 2030년부터 지급 비율이 75%, 2031년 50%, 2032년 25%로 점차 축소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업계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AMPC가 2028년 종료될 경우 미국에 생산시설을 갖춘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세액공제 수취액이 각각 78%, 80% 감소할 뻔 했다. 이번 감세안은 시장이 우려했던 ‘셧다운’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다.
즉시 폐지될 것으로 예상됐던 제3자 판매방식 조건도 2027년까지 2년 유예된다. 그간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세액공제 권리를 할인된 가격에 판매함으로써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최근 전기차 시장의 수요 정체로 인해 수익성 방어에 고심해온 만큼 제도 유예는 국내 배터리 업계에 ‘단기 숨통’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당분간 기존 투자 계획을 유지하며 상원 논의 흐름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은 북미 합작법인을 중심으로 수십조원 규모의 현지 투자를 진행 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초 AMPC 전면 폐지 가능성까지 언급됐지만, 종료 시점을 1년 앞당기는 등 일부 조정에 그쳐 사업 계획을 전면 수정할 수준은 아니다”라며 “미국 공장 증설 및 운영 전략을 큰 차질없이 추진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감세법안에는 중국 배터리 업체에 대한 규제도 명문화됐다. 보조금 수혜 대상에서 해외우려기관(FEOC) 소속 기업을 제외하기로 하면서 중국 정부 통제하에 있는 기업들이 보조금을 받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과거엔 단순 지분구조로 판단했지만, 이번에는 ‘지배력 기준’으로 확대되면서 규제 적용 폭이 넓어졌다. FEOC와의 계약 규모가 일정 금액을 초과하거나 자금지급이 특정 비율 이상이면 보조금 수령이 차단된다.
중국 배터리 업체를 정조준한 이번 조치는 오히려 국내 기업들엔 ‘추격을 따돌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특히 에너지저장장치(ESS), 분리막, 음극재 등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부문에서 공급망 재편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SKIET, 포스코퓨처엠 등 북미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전략을 추진해 온 업체들에 대한 반사이익이 기대된다.
다만 상원 통과 여부는 여전히 변수다. 미국의 재정이 크게 악화할 것으로 예상돼서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이번 감세안이 향후 10년간 3조8000억달러의 재정적자를 추가로 유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 공화당 중도파의 이탈 가능성도 제기된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미국 독립기념일인 오는 7월4일까지 법안 서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힌 만큼 당분간 입법 논의 과정에서 감세안이 대폭 수정될 가능성이 크다. 상원에서 법안 내용이 수정된다면 하원에서 다시 표결해야 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상원에서도 IRA의 혜택을 받은 주의 공화당 의원들이 꽤 있다”면서 “이들의 반대가 클 것이라 실제로 상원 통과가 쉽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