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기기 3사, 관세 리스크에 ‘현지화’로 맞대응
90일 관세 유예···숨 돌렸지만 긴장감 여전 HD현대·효성, 초고압변압기 ‘현지화’ 가속 LS일렉, 주력 배전반 현지 공장···초고압 여전히 국내 생산 “LS일렉 초고압변압기, 가격 전가 가능해 리스크 제한적”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미국이 상호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하며 국내 전력기기 업계가 일단은 숨을 돌렸지만, 업계 안팎에선 ‘현지화 수준’이 향후 관세 리스크를 결정짓는 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내 생산 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됐느냐에 따라 상호관세가 다시 부과될 경우 기업 간 실적 차별화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 시각) 중국을 제외한 75개국에 대해 상호관세를 90일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기존 25%였던 관세가 10%로 낮아지자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 등 국내 전력기기 3사 주가는 하루 만에 반등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다행이지만, 유예는 말 그대로 유예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시 높은 상호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에 전력기기 업체들은 떨고 있다. 지금과 같은 수출 구조가 유지된다면 관세 부담은 고스란히 단가 경쟁력에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계약을 진행하던 고객사들도 지금은 상황을 지켜보든 단계”라며 “추가 관세를 부담하면서까지 제품을 사줄 순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전력기기 산업 자체는 확장세에 진입했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확장, 재생에너지 확산, 노후 설비 교체 등 전력기기 수요를 이끄는 3대 축이 맞물리고 있어서다. 특히 초고압 변압기와 배전반 같은 설비에 대한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고 있다.
◇ AI·신재생·노후 설비 교체 3중 수요···업계는 ‘풀가동’
국내 기업도 이에 맞춰 공장을 바삐 돌리고 있다. 지난해 HD현대일렉트릭은 100%에 가까운 국내 공장 가동률을 기록했다. 초고압변압기와 초고압직류송전(HVDC)을 생산하는 LS일렉트릭 부산 공장도 쏟아지는 주문을 처리하느라 쉴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LS일렉트릭 관계자는 “초고압변압기의 경우 2030년까지 일감이 쌓여 있다”면서 “부산 1생산동 옆 부지에 2생산동 신축 공사를 통해 생산능력을 확대 중이다”고 설명했다. 2생산동 구축이 완료되면 LS일렉트릭의 초고압변압기 생산능력은 연간 2000억원에서 4000억원으로 증가하게 된다.
◇ 관세 변수, 현지화로 극복
관세는 여전히 최대 변수다. 초고압변압기 부문에선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은 ‘현지화’를 통해 관세 리스크에 대응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미국 수요는 전량 현지 생산으로 대응하겠다”는 전략 아래 앨라배마 공장을 증설 중이다. 효성중공업도 멤피스 2공장 추가 투자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전력기기 업체 관계자는 “지금은 증설해도 몇 년 후 수요를 못 따라가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간 관세 회피 전략에서 가장 불리한 구조로 평가받았던 LS일렉트릭도 최근 분위기를 바꿔가고 있다. 초고압 변압기의 경우 여전히 국내 생산 후 수출 구조지만, 주력인 배전반·중저압 전력기기는 이미 현지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 2022년 미국 배전반 업체 MCM엔지니어링Ⅱ 인수에 이어, 지난해엔 텍사스 테크센터 내에 생산시설까지 갖췄다.
증권업계는 LS일렉트릭이 지난해 미국 배전반 부문에서만 매출 1000억원을 올린 것으로 추산한다. 올해는 17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은 지난 3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5’ 행사에서 “배전반은 현지 생산이 맞다는 전략을 일찍부터 세워왔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기조 속에서도 미국 현지 생산 기반을 강화해 영향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했다.
◇ LS일렉트릭, ‘초고압 변압기’ 부문 타격받나
일각에선 LS일렉트릭이 초고압변압기 부문에선 현지 공장 부재, 반덤핑 관세 영향으로 당분간 부침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상무부는 최근 한국산 변압기에 대해 반덤핑 최종 판정을 내리고, 업체별로 관세율을 확정했다. LS일렉트릭과 일진전기는 16.87%의 반덤핑 관세율을 적용받게 됐고,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은 관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같은 제품을 미국에 수출하고도 업체별 관세 부담이 갈린 것이다.
다만 이번 반덤핑 판정과 관련한 비용 인식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도 함께 제기된다. 유재선 하나증권 연구원은 “국내보다 북미 판매가격이 훨씬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향후 반덤핑 관세 리스크는 제한적일 전망”이라며 “현재는 공급자 우위 시장인 만큼, 관세 부담도 가격 전가를 통해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