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구조조정 하세월···불황·탄핵·관세 ‘삼중고’
정치 공백에 정부 주도 구조조정 후순위로 밀릴 위기 美 향하지 못하는 中 물량, 다른 지역에 쏠려 공급과잉 초래 “정부 지원 기대 어려워 결국 기업의 각자도생만이 활로”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석유화학업계가 글로벌 수요침체로 인한 불황으로 정부 주도의 대대적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나타난 정치 공백에 구조조정을 위한 지원 정책 등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발 관세 공포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이 지날 것으로 보여 석유화학기업은 망연자실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해 말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관련 기업들의 사업재편을 유도하고 3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지원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주도적 역할보다 기업 측에 자율 구조조정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에 아쉬움이 컸다.
중국발 저가 물량공세로 시작된 석유화학 제품의 글로벌 공급과잉 탓에 주요 수익원인 에틸렌의 수익성은 수년간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공장가동이 손해인 상황이 계속되면서 LG화학 석유화학부문과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금호석유화학 등 국내 4사는 실적부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석유화학업계는 정부가 나서 국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역시 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에 지난해 4월 ‘석화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협의체’를 출범해 지원 방안을 논의해왔다.
기업 측은 정부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필요한 금융지원 및 관련 인·허가의 속도감 있는 진행 등을 주문했다. 하지만 시장의 자율성에 맡기는 발표에 그쳐 ‘반쪽짜리 방안’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최근 석유화학 회원사로부터 구체적인 정부의 지원 방안을 수렴했다. 산업용 전기요금 감면은 물론 공정거래법상의 기업결합 예외 조항 신설, 실증 시설 지원, 국가전략기술 지정 등을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고 뜻을 모은 것이다.
정부 역시 한경협의 요구사항을 수렴해 올해 상반기에 후속 대책을 발표하려 했다. 단, 탄핵 및 대선이라는 변수에 지원 정책의 마련 및 지속력이 약화될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정치 공백부터 메꿔야 하는 상황에서 석유화학 구조조정 방안은 후순위로 밀릴 공산이 커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럽·일본 등은 정부 주도의 과감한 석유화학 기업 통·폐합으로 경기침체 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났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시도조차 못하고 공회전만 반복하는 꼴이다. 믿었던 정부 대책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결국 각 기업끼리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미국의 관세 정책 역시 석유화학업계의 골머리를 앓게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하기로 결정했지만, 언제 또다시 발언을 뒤집을지 예측할 수 없어서다.
국내 석유화학 제품의 전체 수출 중 미국의 비중은 지난해 기준 8.9%다. 1위인 중국(36.9%)의 4분의 1 수준이지만 두 번째로 큰 교역국이다. 유예로 한숨 돌린 상황이기는 하지만 미국으로 향하지 못한 중국 물량이 다른 지역에 몰릴 것으로 보여 글로벌 공급과잉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관세장벽으로 우리나라가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도 있지만, 대미 수출량이 크지 않아 수혜를 미미할 것”이라며 “오히려 동남아 등에 중국 물량이 쏟아지면서 우리 기업의 입지가 줄어들 수 있어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크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