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팬덤의 세계···이들을 움직이는 혐오의 정동

안티팬덤 분석도 필요

2025-02-26     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시사저널e=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우리는 대체적으로 팬덤을 바라볼 때,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을 상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팬덤에 대한 집단 정체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분석하거나, 이들이 유기체적이고 유동적이지 않은, 다시 말해 고정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행위성을 예측하는 경우를 마주하게 된다.

 팬덤의 긍정적인 감정에 초점을 맞춰 팬덤을 이해하려는 산업계와 학계의 움직임이 바로 그런 사례 중 하나다. 팬덤과 산업의 합성어인 팬더스트리, 즉 팬들이 직접 콘텐츠 제작에 관여하고 이를 소비하는 방식이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의미하는 용어다. 이 용어의 관점도 이런 팬덤의 긍정적인 감정, 즉 좋아함과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자산가치를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덤 안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요동치고 있다. 공연장, 유튜브, 포털 사이트의 댓글 창, 트위터, 정치 영역을 잘 살펴보면 긍정적인 감정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혐오와 증오의 감정들이 이들을 팬의 영역으로 자리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되는 듯한 모습들을 보게 된다. 증오와 혐오는 사실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미디어-연구가 그레이는 자신의 논문 “안티팬덤과 도덕적 텍스트(Anti Fandom and the Moral Text)”에서 즐거움과 불쾌감, 혹은 팬덤과 안티-팬덤은 스펙트럼의 양 끝에 위치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보다 정확하게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돼 있으며, 많은 팬과 안티-팬의 행동과 수행이 서로 유사하거나 심지어 동일하게 나타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Gray, 2005, 845).

플랫폼 자본주의는 아주 쉽게 이런 혐오와 증오의 감각들을 유통시킨다. 이런 텍스트-사디즘적 행위는 이를 행위하는 주체들에게 ‘실천’이란 감각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능동적인 수용자-참여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아이러니, 풍자, 거리두기와 같은 비판적 태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젠킨스(Jenkins)는 컨버전스 컬처를 "여러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가 흐르고, 다양한 미디어 산업이 협력하며, 소비자들이 원하는 엔터테인먼트를 찾아 자유롭게 이동하는 현상" 이라고 정의하며, 이로 인해 미디어 제작자와 소비자 간의 관계가 더욱 복잡해졌다고 설명한다.

이런 디지털 플랫폼 안에서의 수용자 정체성의 ‘힘 돋우기’는 팬덤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해석할 기회를 준 것도 사실이지만, 생산자와 수용자 사이의 전통적인 관계를 재조정하는 계기가 되면서 수용자들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증오와 혐오는 하나의 권력 작동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은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특정 대상에 반복적으로 부착되면서 그 대상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팬덤을 바라보는 방식은 단순히 한쪽에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티팬덤은 다시금 자각하게 한다. 예전에는 ‘안티’란 용어를 빈번히 사용했지만, 현재 그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건 그것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팬들의 특정 감정을 과도하게 긍정적으로만 바라보기보다, 디지털 문화가 생산해 내는 증오 표현이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