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소재 기업, 캐나다 대신 미국으로
美, 캐나다 수입 제품 25% 관세 부과 전망 K배터리, ‘캐나다-미국’ 갈림길에서 전략 재정비 미국 내 직접 생산 확대 가속화 전망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올해 한국 배터리 소재 업체들의 북미 투자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 캐나다에서 생산된 배터리 및 배터리 소재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배터리 업계는 캐나다 대신 미국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거나, 새로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 배터리 업계 흔든다
6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뿐만 아니라, 캐나다·멕시코산 배터리 제품에도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하면서 글로벌 배터리 업체가 긴장하고 있다. 관세 부과 하루 전인 지난 3일 트럼프 행정부는 한 달간 시행을 유예하기로 결정했지만, 업계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과 스텔란티스의 합작 배터리 공장, 포스코퓨처엠과 GM의 양극재 합작 공장, 에코프로비엠의 양극재 생산시설 등이 건설 중이다. 만약 관세가 부과되면 이들 기업의 가격 경쟁력은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캐나다산 배터리와 배터리 소재에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기업들이 생산 기지를 미국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 캐나다 대신 미국?···배터리 소재 업체 전략 수정
그동안 캐나다는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 체결국으로서 배터리 기업들의 투자 선호도가 높았다. 캐나다는 리튬, 니켈 등 핵심 광물의 주요 생산지로 꼽힌다.
그러나 관세 부과가 현실화될 경우, 캐나다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미국으로 수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면 사실상 가격 경쟁력이 크게 뒤처져 수익을 내기 힘들어진다”며 “대안으로 유럽 등 관세 장벽이 없는 국가에 수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 현지 생산시설을 직접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혼다와 공동으로 오하이오에 44억달러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며, SK온과 삼성SDI 역시 미국 내 생산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분리막 생산업체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도 미국 내 생산시설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IRA 규정에 따라 배터리 부품에 포함된 분리막은 오는 2028년부터 북미지역에서 직접 생산 또는 조립해야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SKIET 측은 “2028년까지 미국 내 공장을 가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 “생산기지 미국行, 선택 아닌 필수”
트럼프 행정부가 IRA를 전면 폐기하기 보다는 소비자 세액공제 등 일부 조건을 축소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미국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는 게 배터리 소재 업계의 설명이다. 전날 SK이노베이션은 실적발표 후 컨퍼런스콜을 통해 “AMPC는 미국 현지에 연관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쉽게 폐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캐나다에서 생산된 배터리는 관세 부담을 안게 되지만, 미국 내에서 생산한 배터리는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기업들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로이터는 “IRA 개정을 통해 중국산 배터리 공급망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한국, 일본, 유럽 기업들이 미국 내 직접 투자를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한국 배터리 소재 업체들의 북미 투자 전략도 흔들리고 있다. 엘앤에프는 미국 내 리튬인산철(LFP) 양극재 생산시설 건설을 검토 중이며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도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정부의 배터리 산업 육성 기조와 맞물려 기업들이 미국 직접 진출을 통한 생산 확대를 노리는 흐름의 일환이다. 특히 미국이 캐나다에서 생산된 배터리 및 배터리 소재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이 캐나다 대신 미국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관세 부담 최소화 전략이 핵심”
현재 배터리 기업들은 캐나다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미국 외 지역으로 수출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미국 내 직접 생산을 통해 관세 부담을 회피하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등 캐나다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한국 기업들도 전략 수정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 배터리 소재 업체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관세 정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캐나다에서의 투자 축소와 미국 직접 진출 확대를 본격적으로 검토하는 상황”이라며 “IRA의 세제 혜택을 최대한 활용하고, 관세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 전략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업계에선 캐나다에 공장을 짓고 있는 이들 업체의 투자 철회나 사업 위축 등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에코프로비엠의 경우 지난해 캐나다 공장 건설 작업을 두 차례나 연기하면서 양산 시점도 내년 상반기에서 2027년으로 미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