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폭탄 현실화···삼성·LG, 대응 ‘총력전’
멕시코 일부 생산물량 미국 이전 추진 복수 생산체제 확대해 고관세 리스크 최소화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이 현실화되면서 국내 전자업계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보편관세 부과를 예고했던 멕시코, 중국 등 지역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운영 중으로 타격이 예상된다. 이들 기업은 미국 현지 생산확대, 유통업체와의 협업 강화 등 대응책을 추이다.
3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편관세 정책으로 멕시코, 중국 등에서 생산하는 가전과 TV, 반도체, 전자부품 등을 미국에 판매하기 위해선 높은 관세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트럼프 정부는 이달 1일(현지시간)부터 멕시코와 캐나다로부터 들어오는 수입품엔 25%, 중국엔 10% 등 보편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멕시코 생산물량 미국으로 이전···삼성, 中 HBM 판매도 타격 우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북미 시장 공략을 위해 멕시코에 대규모 생산라인을 운영해왔다. 삼성전자는 멕시코 티후아나 공장에서 TV를, 케레타로에서 냉장고·세탁기·건조기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LG전자는 몬테레이와 레이노사 등에서 각각 TV와 냉장고 생산라인을 운영 중이다.
LG전자의 경우 마그나인터내셔널과 합작한 LG마그나를 통해 지난 2023년 9월부터 멕시코 공장에서 주요 전기차 부품 양산도 시작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LG전자의 북미 시장 매출 비중은 25%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LG전자의 북미향 익스포저(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금액)는 냉장고 80%, TV 100%, LG마그나 60% 수준으로 추정된다.
앞서 미국 정부가 보편관세 정책을 시행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멕시코에서 운영 중인 가전 생산 물량을 미국 현지 공장으로 일부 옮기는 작업을 추진했다.
삼성전자는 게레타로 공장에서 생산 중인 건조기 일부 물량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 공장으로 이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뉴베리 공장은 삼성전자가 지난 2018년 구축한 세탁기 생산 라인으로, 연간 100만대 이상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LG전자도 세탁기와 건조기를 생산하는 미국 테네시 공장에서 냉장고와 TV 등도 함께 만드는 방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순철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은 지난해 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첫날 수십개 행정명령과 메모가 발표되는 등 다양한 정책 어젠다와 방향이 제시되고 있는데 향후 구체적인 정책 입안 과정을 면밀히 지켜보며 사업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며 “미국 등 전세계 각지에서 운영하는 생산역량, 글로벌 공급망 관리능력, AI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제품 경쟁력과 사업 포트폴리오 같은 장점을 살려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인한 변화와 리스크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반도체가 주력 사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관세뿐 아니라 미국 정부의 대중 수출 추가 규제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의 저비용 추론 AI 모델 등장 이후 미국 정부는 엔비디아에 대중 수출 추가 제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엔비디아는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을 독점 중인 기업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부가 메모리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주요 거래처기도 하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딥시크의 충격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AI 반도체의 대중 수출 제재를 강화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중국으로의 HBM 판매 비중이 높고 미국 고객향 HBM 판매는 대부분 재설계 제품 출시 이후를 기약해야 하는 삼성전자에 더 불리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음 타깃은 베트남?···“복수 생산 대응체제 확대”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폭탄을 부과할 다음 지역으로 베트남을 고려하고 있단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박닌, 타이응우옌, 호치민 등 지역에서 4개의 생산라인을 운영 중이다. 스마트폰, TV,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삼성SDI의 배터리 공장도 구축돼 있다. 이들 공장이 차지하는 전체 지역 대비 매출 비중은 30%에 달한다.
LG전자의 경우 지난 2013년 베트남 하이퐁 공장에 그간 분산됐던 가전 생산라인을 대규모로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세탁기, 청소기, 냉장고 등 생활가전과 더불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를 생산해 글로벌 완성차 기업에 납품 중이다.
김창태 LG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는 최근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관세 인상 시 주요 경쟁사 대부분 유사한 어려움 겪을 수밖에 없겠지만 제품 생산부터 판매까지 전 밸류체인 최적화를 추진하고 잠재 부정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각 상황 전개에 따른 시나리오별 대응방안을 수립했다”며 “먼저 고율 관세가 부과되는 제품은 여러 생산지에서 대응할 수 있는 스윙(Swing) 생산체제를 확대하고 비용 경쟁력을 기반으로 최적 생산지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필요시엔 선행 생산으로 물량을 분산하고 유통업체와 협업해 리스크를 최소화할 것”이라며 “만일 관세 인상 수준이 본질적 공급망 구조 변화를 필요로 할 경우, 업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팩토리 구축 역량과 이미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미국 내 생산시설 운영 노하우 등을 활용해 생산지 이전과 기존 생산지별 캐파(생산능력) 조정 등 보다 적극적인 생산지 전략 변화도 고려범위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