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리스크③] “칩스법 보조금 축소, 국내 반도체 생산 강화해야”
칩스법 폐기보단 보조금 축소 전망 국내 반도체 생산 확대 대응책 거론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미국 신정부는 보조금 지급을 통한 반도체 산업 육성에 회의적이다. 칩스법을 완전 폐기하진 않겠지만 보조금 지급 규모를 줄일 가능성이 높단 분석이 나온다. 미국에 생산공장 건립을 추진 중인 국내 기업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 대책이 시급하단 지적이다. 정부가 대미 소통 창구를 활성화하는데 더해 국내 반도체 생산 능력을 강화해 대미 협상력을 높여야 한단 조언이 제기된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2기 정부는 보조금 중심의 기존 반도체 정책을 뒤집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첨단 반도체 개발 견제를 목적으로 한단 점에서 직전 바이든 정부와 큰 틀의 방향성은 같지만, 실현 방안엔 차이가 있다.
전 정부가 동맹국과 협조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이었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우방국에 의존하지 않고 미국의 독자적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을 활용해 중국을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서 봉쇄하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을 짓는 것을 유도하기 위해 동맹국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보단 관세를 올려 미국 내 공장을 설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 것이란 분석이다. 이에 반도체 분야 보조금 근거법인 칩스법을 흔들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칩스법은 지난 2022년 바이든 정부가 미국 내 기술 우위, 공급망 구축을 위해 발효한 법률로 미국에 투자 반도체 기업에 생산 보조금, 연구개발(R&D) 지원금을 5년간 지원한다. 미국 반도체 제조 기반을 확대하면서 첨단반도체의 대중국 수출을 규제해 중국 반도체 산업 발전을 억제하는 효과를 낸다. 칩스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을 5% 이상 늘릴 수 없다.
바이든 정부는 칩스법에 따라 520억달러 규모의 지원금을 풀기로 했다. 국내기업은 텍사스주에 생산공장 신설을 추진하는 삼성전자가 약 46억 달러, 인디애나주에 건립을 계획 중인 SK하이닉스가 4억6000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 그런데 실행에 옮겨야 할 트럼프 정부는 보조금 지급에 비판적이다.
일단, 현상황에선 칩스법 전면 폐기 가능성은 낮단 분석이 나온다. 하워드 루트닉 트럼프 정부 상무장관 지명자는 “칩스법을 이번 정권에서도 이어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칩스법 유효기간이 2027년까지로 명시돼 있고, 칩스법에 따른 수혜지역 상당수가 공화당 우세지역이라, 전면 폐기시 여당 내 반발 가능성도 상당하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제정 당시 공화당 의원들도 많이 동의했기에 칩스법을 완전히 없애긴 어려워 보인다”며 “보조금 문제를 손댈 가능성이 높다. 외국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은 트럼프 행정부 노선과 다르다”고 말했다.
보조금 지급 규모는 축소될 가능성이 높단 관측이다. 이 경우 우리 기업은 미국 현지 투자규모를 줄여야 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국내보다 미국에 공장을 설립, 운영하기 위한 비용 부담이 컸음에도 보조금을 감안해 미국 현지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보조금 지급액이 줄어들면 우리 기업의 가격경쟁력은 떨어지기에 대미 투자 확대 실효성에 대한 재점검 시기가 됐단 지적이다.
탄핵 정국이지만, 우리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대미접촉에 나서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정부 의사 결정 과정에서 로비, 협상에 적극 나서는 것에 더해 기업은 칩스법 리스크에 관계없이 자체 경쟁력을 유지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용인반도체클러스터를 차질없이 진행해, 미국 내 제조보다 국내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할 체계를 빨리 갖춰야 한단 조언이다. 기존 미국 내 건립 추진 중인 생산공장 외에 추가 추진은 신중해야 한단 의견도 나온다.
김 연구원은 “미국에 공장을 짓는 건 결국 미국에 유리한 방향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걸 미국쪽으로 가져가는 건 우리 기업, 정부 입장에서 좋지 않다”며 “국내 경쟁력 강화 방안을 찾는게 바람직하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절대적 공급자가 되면 미국도 우리를 무시할 수 없다. 협상력을 높이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중국 제재 강화로 중국에서 생산하는 우리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 등 제재가 현실화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단 조언도 제기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만든 한국산 반도체 수출품에 대한 새로운 수요처를 발굴해야 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