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월호 변호사’ 송기호, 대통령기록관 빗장 열었다
“대통령기록물 지정행위도 사법심사 대상” 대법원 최초 판결 참사 당일 대통령실 등 생산·접수 문건 목록 공개소송 새 국면 송 변호사 “대통령기록물 공개가 원칙···대응 적절성 확인 가능” “윤석열 기록물도 함부로 봉인 안 돼···공익소송 부담 줄일 것”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2016년 4월16일 여객선 세월호가 기울던 그날 대통령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왜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렀을까. 오전 10시쯤 첫 보고를 받고 오후 5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하기까지 공백으로 남은 ‘세월호 7시간’, 재난컨트롤 타워인 대통령실은 어떤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을까. 2025년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 질문을 파고든 이가 있다. ‘세월호 변호사’로 친숙한 송기호 변호사다.
송 변호사는 참사 당일 대통령비서실, 대통령경호실, 국가안보실에서 세월호 승객 구조를 위한 공무수행 중 생산하거나 접수된 목록을 사법 절차를 통해 확인하고자 했다. 공익소송은 8년간 이어졌다. 하늘로 간 어린 영혼들에 대한 위로와 추모이자, 법률가의 양심이자 사명이었다.
대법원은 응답했다. 지난 9일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행위의 유·무효 또는 적법 여부를 다시 판단하라고 했다. 대통령의 재량을 인정해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열람 할 수 있었던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사법심사를 통해 그 지정행위의 적법 여부를 살펴볼 수 있다고 봤다. 굳게 잠긴 대통령기록관의 빗장이 열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묵묵하게 공익소송을 진행한 송 변호사를 시사저널e가 만나 그간 소회와 법률적·사회적 의미를 물었다. 다음은 송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Q. 지난 9일 대법원에서 역사적인 판결이 있었다. 어떤 소송이었고 일반적인 정보공개청구 소송과 어떤 차이점이 있나.
우리 사회에 큰 상처와 슬픔을 남긴 세월호 참사는 햇수로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러나 당시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 대응이 적절했는지 여전히 의문이 있고 논란이 남아있다. 2017년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 아이들을 구하기 위하여 국가는 무엇을 했는지를 확인하려 소송을 시작했다. 국민의 생명 보호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다. 이 기본 원칙을 확인하려는 정보공개소송이었다.
안타깝게도 당시 대통령실이 생산하거나 접수한 공문서들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봉인’돼 최소 15년에서 최장 30년까지 공개가 제한됐다.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결정한 사안이다. 봉인된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열람하는 행위는 일종의 ‘금기’로 여겨진다. 대통령의 지정행위에 아주 높은 수준의 재량을 인정하는 것이다. 국회의 3분의 2의 동의나, 고등법원장의 영장에 의해서만 아주 제한적으로 열람이 허용 돼 왔다. 국회나 수사가 아닌 사법심사를 통해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열람하려했다는 점이 일반적인 정보공개소송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Q. 대법원은 대통령기록관의 비공개 처분이 적법했다는 2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대통령의 보호기간 설정행위도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회가 제정한 법률(대통령기록물법, 정보공개법)에 근거해 이뤄지는 대통령기록물 지정행위인 이상 사법심사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을 확인한 판결이다. 다만 대법원은 보호기간 설정행위가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볼만한 명백한 사정이 없다면 원칙적으로는 그 결정을 존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제했다. 적법하게 보호기간이 정해졌는지에 대한 증명책임은 대통령기록관이 부담한다고도 했다.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비공개 지정 요건에 따라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지정을 해야 하는 것은 법률상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므로 세월호 참사 기록물에 대한 대통령의 지정행위가 법에 따라 이루어진 것인지를 법원이 심사할 수 있다고 한 것도 상식이다.
Q. 대통령기록물, 지정행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등 일반인에게 생소한 내용이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제 국가이다. 국가 기능의 중심을 담당하는 대통령이 재임 중에 어떻게 직무를 수행했는지를 기록으로 보존하고 평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대통령기록물제도라는 것을 만들었다. 대통령기록물이라는 이름으로 관리하고 공개하는 제도가 바로 대통령기록물제도이다.
그런데 국방과 안보 기록과 같이 대통령 퇴임 후 당장 공개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 대통령은 해당 문서에 비공개 기간을 지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예외적으로’ 비공개를 지정한 문서를 대통령지정기록물이라고 한다. 법은 비공개 기간 지정을 할 수 있는 사유와 요건을 정해놓고 이외에는 ‘공개할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Q.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라면 박근혜 대통령의 기록물 뿐만 아니라 현직 대통령의 기록물도 함부로 봉인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될 것 같다.
그렇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현직 대통령인 윤석열에게도 적용된다.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그가 재임 중에 한 행위에 대한 대통령기록물을 함부로 비공개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법에 어긋나게 비밀기간을 지정하는 행위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불법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된다면 최상목 권한대행 역시 함부로 비밀 봉인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결코 초법적인 존재가 아니다.
Q. 이어지는 파기환송심에서는 어떠한 쟁점으로 소송이 진행되고, 최종적으로 공개가 결정된다면 어떤 후속 조치를 할 수 있나.
파기환송심에서는 세월호 기록물을 비밀로 봉인한 황교안 전 권한대행의 지정행위가 과연 법률 요건에 맞는 것인지를 본격 심사할 것이다. 대법원은 대통령기록관이 다툼의 대상이 되는 정보를 법원에 제출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비공개 열람·심사를 진행하도록 했다. 소송 당사자는 그 내용을 보지 못하더라도 법원이 세월호 기록물을 직접 보고 그 공개 여부를 판단했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종적으로 승소해 문건의 목록이 공개된다면, 어떤 세월호 대통령실 문서가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확인할 것이다. 이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Q. 공익목적의 행정소송을 다수 제기하고 있다. 대표적인 소송에는 어떤 것이 있고 가장 큰 애로사항은 무엇인가.
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40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국가 예산을 지급해야 하는 사건(ISDS)에서 정부 책임자 등의 이름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소송을 하고 있다. 이는 국민이 알아야 할 상식적인 정보다. 하지만 정부의 소송권 남용으로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린다. 1심에서 일부 공개가 결정됐는데도, 기계적으로 항소와 상고를 진행한다.
비용도 문제다. 공익목적의 정보공개 소송인데도 정보의 공개를 청구한 시민이 일부 패소할 경우 국가의 변호사 보수 비용까지를 시민이 부담하게 된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정부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겠다고 압박하는 꼴이다. 소송이 남발되는 것은 막아야 겠지만, 공익목적의 소송에서 소송비용을 어떻게 정리할지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
Q. 더불어민주당 송파을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당인으로서, 입법기관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민주주의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정당은 지향점을 분명히 하고 정책을 축적·발전시켜야 한다. 독일의 통일은 기민당과 사민당이라는 정당이 뿌리내렸기에 가능했다. 골목과 거리에서 시민 속에서 뿌리내린 정당들이 국민 앞에서 경쟁하는 정치를 만들고 싶다. 국민의 공익목적 정보공개 소송에 대해서는 소송비용 부담을 없애는 입법을 하고 싶다. 대법관을 획기적으로 늘려, 정의가 지연되지 않도록 힘쓸 계획이다.
송기호 변호사는.
1963년 전라남도 고흥 출생. 광주제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한국 YMCA전국연맹 농촌부 지역간사. 전남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실장. 1992년 국민은행 행원으로 2년간 근무. 1998년 40회 사법시험 합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장 활동. 키코(KIKO)피해 중소기업 소송대리, 론스타 국제중재(ISD) 정보공개 소송, 한미 FTA 협상 문서 정보공개 소송, 가습기 살균제 관련 소송 등 진행. 법무법인 수륜아시아 대표변호사. 더불어민주당 송파을 지역위원장.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