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비 낮으면 세금 250만원 더 내야”···어떤 車 해당될까
규정 개정 후 iX3·EQB 신규 고객, 250만원 채권 매입할 수도 BYD도 “하향 조정” 요청···정부, 업계 의견 고려 적용유예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정부가 올해 밀려 들어오는 수입 전기차(BEV)에 대응해 국산차에 유리한 방향으로 자동차 관련 제도를 손보는 중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현재 판매되고 있는 전기차 중 일부가 친환경차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구매고객의 도시철도채권 매입 의무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일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요건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이번 개정안 주요 내용 중 하나가 국내 전기차를 환경친화적 자동차(친환경차)로 분류하기 위한 기준의 강화다. 전기차, 수소차, 하이브리드차는 연비나 전비를 의미하는 에너지소비효율을 비롯해 구동 축전기 공칭전압 등 기술적 세부사항에 대한 요건을 충족해야 현행법상 ‘친환경차’로 분류된다. 친환경차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차량은 구매 시 세제 감면 혜택이 축소된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을 통해 전기차의 친환경차 분류 요건 중 하나인 전비 기준을 세분화해 강화했다. 현행 규정상 전기차가 친환경차로 분류되려면 초소형·경형·소형차 5.0㎞/㎾h 이상, 중형·대형차 전비 3.7㎞/㎾h 이상 기준을 만족하면 된다.
개정안에선 초소형·경형·소형차의 전비 기준이 유지된 반면 중형차 4.2㎞/㎾h 이상, 대형차 3.7㎞/㎾h 이상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기존 규정과 비교해 중형차, 대형차 기준이 구분됐고 대형차 요건이 완화한 반면 중형차 요건이 까다로워졌다.
개정안에 대형차를 구분하는 제원 기준도 추가 마련됐다. 앞·뒷바퀴 중앙부 사이 간격을 뜻하는 축간거리(축거)가 3050㎜ 이상인 차종은 대형차로 분류된다. 현행법상 길이(전장), 높이(전고), 너비(전폭)가 모두 소형차 기준을 넘으면 대형차로 분류됐던 것에서 기준이 하나 더 생겼다.
산업부는 “이번 개정안은 정체된 국내 전기차 시장의 전반적인 에너지소비효율 향상을 통해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등 현안을 극복하려는 취지로 마련했다”며 “더 높은 효율을 달성한 전기차에 각종 세금 감면 혜택을 더 지원해 자동차 제조사의 친환경차 기술 개발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국산차는 아이오닉5 N, EVT GT만 요건 미달
업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사실상 국산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 방어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중형 전기차의 친환경차 요건 기준이 강화함에 따라 국산차보다 수입차 중 친환경차 목록에서 배제되는 차량이 더욱 늘어날 예정이다.
현재 국내 판매 중인 수입 중형 전기차 중 엄격해진 전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주요 모델로 BMW iX3 M 스포츠·i4 M50 xDrive, 벤츠 EQB·EQE SUV(일부 트림), 포르쉐 타이칸 등이 꼽힌다. 국산차 중에선 현대차 아이오닉5 N, 기아 EV6 GT(이상 전비 3.7㎞/㎾h) 등 고성능 중형차 2종만 요건에 미달했다.
대부분 고성능, 고가 모델이어서 브랜드별 전체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진 않다. 하지만 세금 감면 혜택이 감소해 잠재 고객의 구매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개정안 적용 후 해당 차량을 신규 구매한 고객은 친환경차에 전액 감면되는 250만원 상당의 도시철도채권을 매입해야 한다. iX3, EQB 같은 일부 볼륨 모델이 친환경차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점은 해당 업체의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이다.
기존에 없던 중형차, 대형차 구분 기준이 도입된 점에 대한 수입차 업계에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산업부는 “크기, 중량이 큰 대형급은 축간거리 증가를 통한 배터리 공간 확보가 필수”라며 “미국 평균 연비제도에서도 축간거리를 평균연비 기준 설정의 인자로 사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 BYD 첫 차 ‘아토3’ 전비 높지만 “규제 완화해달라”
산업부는 다만 수입차 업계 의견을 수용해 이번 행정 예고된 친환경차 검증 제도 개정안을 연말까지 적용 유예한단 계획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와 일부 수입차 업체들이 기존 신차 라인업으론 친환경차 요건을 즉각 충족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산업부는 다만 수입차 업계에서 요구한 2년보다 짧은 1년 유예를 결정했다.
수입차 업체들이 개정안에 대응할 시간을 1년 벌었지만 충분치 않은 실정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비교적 작은 규모를 갖춘 한국을 위해 신차 제원을 일괄 개정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국내 전기 승용차 시장에 본격 진출한 BYD 코리아도 앞서 작년 중형 전기차의 전비 요건을 하향 조정해 달라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다.
BYD 코리아는 이날 환경부로부터 주행거리를 인증받은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토3(Atto3)로 친환경차 요건을 어렵지 않게 충족한 것으로 분석된다. 인증된 정격전압, 축전지 용량을 고려해 단순 산출한 아토3 상온 복합전비가 5.3㎞/㎾h에 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BYD 코리아가 향후 씰(Seal), 돌핀(Dolphin) 등 차급별 모델을 후속 출시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강화한 친환경차 요건으로 인한 판매 악영향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는 고효율 전기차 출시를 유도하기 위해 마련한 개정안이기 때문에 전비 요건을 고수한단 입장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예년보다 늘리기 어려워진 가운데 이번 규정 개정안이 국산차에 이롭게 작용할 순 있을 것”이라면서도 “정부가 개정안을 적용 유예한 것에 국산차, 수입차 구분을 떠나 우선 캐즘을 극복하고 보자는 의도도 담긴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