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원인’과 ‘영향요인’ 사이

IATA “ICAO 부속서 13에 의거해 영향요인 규명하는 게 중요” “비난 아닌 사태 예방이 조사 목적”···억측 멈추고 지혜 모아야

2025-01-13     최동훈 기자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한 번의 항공 사고로 너무 많은 생을 잃습니다. 이번 (제주항공 2216편) 사고에 영향을 끼친 요인들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제항공운송협회 부속서(ICAO Annex) 13에 의거해 온전하고 독립적으로 이뤄진 조사의 결과는 근본적인 원인을 완전히 파악하고 추후 사태를 예방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지난 6일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에 대한 입장을 묻는 이메일을 보낸 후 받은 회신 내용이다. IATA는 이날 기준 글로벌 항공 운송량 80% 가량 비중을 차지하는 348개 항공사를 회원사로 둔 국제기구다. 제주항공을 비롯한 국적 항공사들도 가입했다.

답장 본문 중 ‘영향을 끼친 요인(contributed factor)’과 ‘ICAO 부속서 13’ 두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영향 요인은 통상 이번 제주항공 사고에 대한 국내 기사에 흔히 쓰는 단어 ‘원인(cause)’과 사뭇 다른 어감을 전했다. ICAO 부속서도 생소한 매뉴얼이었다.

ICAO 부속서 13과 영향 요인을 함께 알아봤다. ICAO 부속서 13은 항공기 운항 중 기체 파손, 인명 피해를 일으킨 사건·사고를 분류하고 이를 조사하는 절차 등을 담은 문서다. ICAO 부속서가 법적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항공 안전, 운행 효율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메뉴얼이라는 점에서 공신력을 얻고 있다.

ICAO 부속서 13 본문에서 ‘(부속서에 담긴) 제안은 사건·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한 것이고 비난(blame)하거나 책임(liability) 지울 대상을 추정(presumption)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내용이 수차례 반복 기재됐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했다. 사건,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고의든 실수든 사태를 일으킨 주체를 찾는 것도 조사의 목적 아닌가. 팩트체크만 하고 매뉴얼에 따른 조사 과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피한다는 뜻일까.

이에 관한 국제민간항공조종사협회(IFALPA)의 성명은 이렇다. “부속서 13에 언급된 원인(cause)은 사건사고의 여러 측면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책임과 혼동돼 처벌, 법적 보상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이는 부속서 목적과 모순되는 것으로서 원인을 영향요인(contributing factors)으로 대체해야 한다”. 책임자를 찾아 혼내는 것이 항공 안전이라는 대의명분을 달성하기 위한 결정적 요인이 아니란 뜻으로 이해됐다.

제주항공 사고의 ‘전말’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희생자 유족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이번 사태에 관해 과실 있는 주체가 존재한다면 법령에 의거해 응당 처분받아야 한다.

하지만 희생자 유족과 대한민국조종사노동조합연맹 등이 누차 강조하듯, 명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인과관계에 관한 억측을 만들어내고 이를 퍼뜨리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도리에 어긋난다. 앞으로 또 다른 희생을 치르지 않도록 이번 일의 전 과정을 명명백백하게 파악하는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 IATA가 영향요인이라는 단어를 쓴 것도 이 같은 맥락을 고려해 신중하게 고른 단어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최근 비행기록장치(FDR), 조종실음성기록장치(CVR)가 충돌 직전 4분간 기록 저장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조사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이 가운데 조사팀 구성원이 조사 과정의 공정성, 독립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일부 교체되는 등 혼선을 빚었다.

녹록지 않은 여건 속에서, 안타까운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모두 지혜와 마음을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