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침묵하는 다수, 소리치는 소수···누가 다수인가
소수가 다수 지배해선 안돼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올해 무한도전이 20주년을 맞이했다. 무한도전은 2006년부터 2018년까지 1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대중에게 크나큰 사랑을 받았다.
종영한지 7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까지도 회자가 되는 국민 예능이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무한도전은 기존 멤버들의 하차를 포함한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들이 겹치면서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복합적인 문제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일명 ‘무한도전 시어머니’다. 무한도전은 높은 인기만큼 강력한 팬덤을 갖고 있었고, 이 팬덤 중 일부는 시청자 게시판 등에 극성적으로 의견을 올리기 시작했다.
본인들의 뜻에 맞지 않는 출연진과 프로그램 방향성에 대한 불만과 불평의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커졌으며, 이에 프로그램이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고 더 흥분해서 과격해져갔다.
이들의 목소리는 컸지만, 사실 이들은 무한도전 시청자 중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조용히 프로그램을 시청했지만, 제작진은 소수의 아우성에 흔들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같은 모습은 아직까지도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고, 이제는 유튜브나 SNS 등 자신만의 채널을 통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공동의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본인들이 다수인양 착각을 하게 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이 기사로 다루는 것은 목소리를 내는 소수지, 침묵하고 있는 다수가 아니다. 조용히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기사를 쓸 방도는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결국 목소리를 내는 소수가 마치 다수인 양 포장되는 일이 다반사다. 침묵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의견을 확인할 수 없기에 이들이 소수인지 다수인지 알 수 없지만, 소리치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침묵이 금’, ‘침묵이 미덕’이라는 말이 오랜 기간 내려오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를 꺼려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누칼협(누가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이라며 비웃는 풍조까지 나타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밖으로 내기 꺼려했고, 와중에 소리 내는 소수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침묵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목소리의 위력을 보여준 가장 대표 사례가 바로 대통령 탄핵이다. 대통령 탄핵과 같은 큰 일이 있을 때는 매서운 한파에도 수백만명이 직접 집회에 나가 촛불과 아이돌 응원봉을 흔들며 목소리를 냈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옛말이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고성을 지르고 욕을 하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졌지만, 그 효과에 대해선 다시 한 번 생각해봄직하다.
침묵의 힘이라는 말이 있지만, 표현의 힘은 더 크다. 게다가 지금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자기 목소리를 내기 좋은 시대다. 이젠 다수의 소리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