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출범···현대차그룹의 美 사업 과제 3가지

판매경쟁 격화·관세 부담·전기차 시장 위축 등 우려 확대 업계 “규제 수정이 美 보호무역 저해할수도, 적극 로비해야”

2025-01-01     최동훈 기자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HMMA). / 사진=현대차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주요 시장인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를 맞아 굵직한 사업 현안들에 직면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트럼프 재집권으로 인한 자동차 시장 경쟁 격화, 관세 장벽, 전기차(BEV) 시장 위축 우려 등 과제에 봉착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올해 인사에서 성과주의 기조를 이어감과 동시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체제에 대비한 전문가들을 주요 인사로 발탁했다.  / 이미지=정승아 디자이너

◇ 전기차 판매 압박 약해질 듯···기성 업체들 美 투자확대 추진

트럼프 행정부가 자동차 산업 관련 규제의 완화나 철폐를 추진함에 따라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기성 자동차 업체들의 신차 전략이 한층 유연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당선 전후 줄곧 기업평균연비(CAFE) 규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철회할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CAFE 규제는 지난 1975년 글로벌 석유 위기 대응 목적으로 도입됐다. 이에 따라 현지 자동차 업체들은 매년 강화하는 신차 평균 연비 기준에 맞춰 하이브리드차, 전기차의 개발·판매에 투자해왔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에 더해 지난 2021년 8월 전기차 구매 인센티브 지급, 배터리 공급망 요건 등을 담은 IRA를 시행했다. 통해 전기차 보급 확대와 미국 중심 공급망 확장을 유도해왔다. 트럼프 2기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속 미국 경기를 회복하고 토종 기업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CAFE와 IRA를 철회하거나 동결할 전망이다.

배출 규제 완화는 현지 모든 자동차 업체에게 위기이자 기회라는 관측이다. 미국 자동차 시장 전문조사기관 콕스 오토모티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지 자동차 딜러들은 내년 1분기 신차 판매가 긍정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자동차 분야 전문조사기관 콕스 오토모티브가 현지 자동차 딜러들에게 다음 분기 판매 업황 전망을 설문한 결과를 나타낸 표. 100점 만점에 가까울수록 긍정적으로 전망했음을 의미한다. 딜러들은 내년 1분기 전망 점수로 평균 54점을 매겼다. 딜러 수익이 가장 좋았던 2021년 이후 최고치다. / 자료=콕스 오토모티브

응답한 딜러들은 1분기 자동차 판매 업황 전망에 대한 점수로 100점 만점 중 평균 54점을 매겼다. 높을수록 긍정적으로 내다본다는 의미다. 이는 딜러 수익이 가장 높았던 2021년 이후 4분기 최고치다. 딜러들은 세금 환급 같은 지원 조치의 가능성과 이자율 인하 가능성 등을 고려해 내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다만 모두에게 신차 판매 확대 기회가 열렸기 때문에 인센티브 확대 등 판촉, 투자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스텔란티스는 미국 오하이오주(洲) 소재 지프 공장의 근로자 1100명을 구조조정하려던 계획을 지난달 철회한 후 생산을 늘리고 있다. 폭스바겐도 미국 스타트업 리비안과 58억달러(약 8조5400억원)를 합작 투자해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의 전동화 아키텍처, 소프트웨어를 공동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기아가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 시장에서 호실적을 거두고 있지만 정책 변화에 따라 전기차 투자 전략을 급히 손봐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10월 미국 조지아주에서 가동 개시한 전기차 공장 HMGMA에서 하이브리드차 생산 라인을 개설하기로 결정한 것도 정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가동중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직원들이 사전 생산된 전기차 IONIQ 9를 지켜보고 있다. / 사진=현대차 미국법인(HMMA)

◇ “관세 늘면 현대차 이익 줄어···인센티브 없으면 전기차 안 팔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등 주력 수출 품목에 대한 관세 인상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하는 실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제조업 부흥, 외국인직접투자 확대 등 미국 중심 통상정책의 일환으로 외국에 보편 관세를 추가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 기아는 글로벌 공장 가동 전략에 따라 미국에 한국산 신차를 지속 수출 중인 가운데 관세 부담 확대에 시달릴 수 있다. 양사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 업체의 대미 완성차 수출은 지난해 기준 210억4000만달러(약 31조원)에 달한다.

한국에 보편 관세가 부과되면 현대차, 기아의 수익성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S&P글로벌은 한국산 품목에 보편관세 20%가 부과되면 현대차, 기아 세금감가상각비 차감전 영업이익(EBITDA)이 19%까지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내 생산 역량을 확대하고 있지만 본격 가동 전이고, 수출 비중이 커 업황 변화에 즉각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11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LA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LA 오토쇼에 참가해 수소연료전기차 콘셉트카 이니시움을 소개하고 있다. / 사진=현대자동차

트럼프 2기의 배출 규제 완화 기조는 전기차 시장의 악재로 여겨진다. 추후 IRA를 폐기하거나 행정명령을 통해 일부 조항을 개편하는 방식으로 전기차 구매 인센티브를 제거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IRA에 따라 배터리 핵심광물, 부품·전기차 원산지 등 조건에 따라 최고 7500달러(약 1100만원)의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 내연기관차보다 여전히 비싼 전기차의 세제혜택이 없어지면 수요가 더욱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 기아는 배터리 공급망, 현지 최종 조립 등 일부 세제혜택 적용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지만 리스 상품으로 제도를 우회해 고객의 구매 부담을 덜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이 같은 우회 전략을 비롯한 전기차 판매 촉진 제도를 손보면, 현대차·기아의 현지 시장 3위 위상이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현대차, 제너럴모터스(GM) 양사 최고경영진이 지난 9월 포괄적 협력 위한 MOU를 체결한 후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실판 아민 GM 수석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 마크 로이스 GM 사장, 메리 바라 GM 회장 겸 CEO,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장재훈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 호세 무뇨스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 사장. 현대차가 GM과 협력해, 격변하는 미국 업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사진=현대차

◇ 업계 “규제 개편 모순 부각해 정책방향 수정 설득할 수도”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2기의 정책 기조에 다각도로 대응하고 있다. 시장 경쟁 격화에 대응해 HMGMA에서 전기차 뿐 아니라 브랜드별 하이브리드차 생산을 준비 중이다. 관세, 전기차 관련 정책에 관해선 미국 저명 인사를 임원으로 영입해 정치권 로비 역량을 강화했다. 한편 미국 LG엔솔 전용 공장의 배터리셀 공급권을 기아에 일부 매각하는 등 전기차 공급망 개편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응하는 중이다.

업계 일각에선 트럼프 2기의 자동차 산업 관련 정책 기조에서 기회 요인을 발견해 한국 기업 성장의 계기를 살릴 묘수를 살릴 필요가 있단 의견이 나온다. 예를 들어 IRA 철폐 후 중국산 배터리 관련 품목 수입을 시도하거나, 기존 규제를 한국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하도록 로비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IRA 철폐로 인해) 친환경차 보조금이 사라지면 중국산 관련 품목이 미국에 수입될 여지가 존재한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 공급 차단이라는 기존 목적을 고수할 수 있는 신규 규제를 고민하도록 독려해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