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재계결산⑨] 中 ‘배터리 굴기’에 K배터리 위기 고조

LG엔솔, 中 CATL에 점유율 1위 자리 내줘 中 투자 늘리는데 K배터리는 투자속도 조절 나서 전고체 배터리 기술 개발 등 정부 지원금, 中 10분의 1

2024-12-20     정용석 기자
중국 CATL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출처=연합뉴스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중국의 ‘배터리 굴기’가 거세지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의 입지가 흔들렸던 한해였다. 막대한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들은 내수 시장을 지렛대 삼아 규모를 키운 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곳곳에서 K배터리와 맞붙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저렴한 제품군부터 고성능 신제품까지 포트폴리오 다양화가 사활을 걸었다. 하지만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기)이 내년에도 이어지면서 ‘보릿고개’를 견뎌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초 배터리업계 ‘맞형’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서 점유율 1위 자리를 CATL에 내줬다. 올 10월까지 누적 점유율 역시 중국 CATL(26.4%)이 차지하면서 1위 자리를 지켰다. 

“이대로 가면 세계 시장서 중국에게 따라잡힐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배터리와 전기차를 모두 생산하는 중국 비야디(BYD)는 점유율 6위를 기록하며 5위 삼성SDI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다. 일각에선 중국의 내수시장 부진에 따라 CATL, BYD 양사의 비중국 시장 점유율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들은 브라질, 태국, 이스라엘, 호주 등 해외 수출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유럽 시장도 中에 내줄 판···올해 역전 예상

미국과 유럽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성장세는 뚜렷하다. 특히 규모 면에서 미국 다음인 유럽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의 굴기가 더욱 거세졌다는 평가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 내 중국 점유율은 2020년 10.8%에서 올해 1분기 44.7%로 4배 이상 뛰었다. 제조사 별로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등이 CATL의 배터리를 채택하고 있다. 

문제는 올해 중국의 점유율이 한국을 역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는 점이다. 연말까지 점유율 50%를 돌파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반면 K배터리 점유율은 지난 2021년 70.9%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올해 1분기 50.8%까지 내려갔다.

국내 배터리 3사는 중국보다 앞서 유럽에 생산기지를 건설해 기반을 다져왔지만, 중국 역시 역내 생산 시설 확보에 적극 투자 중이다. CATL은 내년 8월을 목표로 헝가리에 100GWh 규모 공장을 건설 중이다. 독일 에르푸르트에 들어설 공장은 내년부터 순차 가동된다. 한국무역협회(KITA) 브뤼셀지부는 최근 보고서에서 “유럽연합(EU)은 역내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중국이 역내에서 생산한 제품에 대해서는 차별적 조치가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SK온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모습. / 사진=SK

◇ ‘속도조절‘ K배터리···투자 확대하는 中

중국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올해부터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재무 체력도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SK온은 지난 3분기 창사 이후 첫 분기 기준 흑자를 냈지만, 올해 기준으론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도 올 3분기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를 제외하면 적자를 봤다. 

양극재 업체 3곳(에코프로비엠·엘앤에프·포스코퓨처엠)은 올해 3분기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동박과 분리막 등 소재업체들도 올해 수백억원대 영업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중국 업체들은 국내 배터리업계가 적자를 기록할 때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고 있다. CATL은 지난 3분기에만 2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현금 곳간이 쪼그라들면서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금을 쌓아둔 중국 업체들이 투자 규모를 늘리고 있는 반면, 국내 업체들은 캐즘 탓에 투자속도 조절에 나선 상황이다. 

일례로 CATL은 최근 주요 협력사에 R&D 사업 자금까지 부담하겠다는 취지의 서한을 발송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CATL을 중심으로 배터리 생태계를 공고히 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면서 “소재·장비 업계 등 배터리 생태계 주도권을 확보해 경쟁사와의 격차를 벌리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CATL은 최근 완성차 기업 스텔란티스와 스페인에 6조원 규모 배터리 공장 투자도 발표했다.

중국이 투자를 늘리고 있을 때 국내 업체들은 거꾸로 행보를 보이고 있다. LG화학은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또 줄였다. LG화학은 지난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설비투자를 4조원에서 2조원 중반대로 조정한다고 밝혔다. 에코프로비엠은 연초 설정했던 생산설비 투자 규모를 1조5000억원에서 1조원 내외로 축소했다. 포스코퓨처엠은 중국 화유코발트와 경북 포항에 전구체 합작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LG에너지솔루션 미국 애리조나 공장 조감도. / 사진=LG에너지솔루션

◇ K배터리 ‘보릿고개‘ 장기화 전망···“살아남는 자가 승자“

배터리 시장 규모 자체가 쪼그라드는 상황 속에서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는 평가다. 배터리 3사는 폼팩터 다양화, 저렴한 제품인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개발 등에 나섰지만 이미 LFP 배터리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중국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양국 간 배터리 산업을 위한 정부 지원금 규모도 극복하기 힘들 정도로 벌어졌다. 정부는 전고체 등 차세대 배터리 지원을 위해 올해부터 2028년까지 1172억원을 투입한다. 중국은 지난 5월 전고체 배터리 연구개발에만 60억위안(약 1조19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약 10배 규모다.

K배터리의 ‘보릿고개’는 장기화할 전망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배터리 소재에 대한 수입 관세 부과와 함께 현지 배터리 설비투자에 대한 저금리 대출 제도를 폐지할 것이란 예상에 전기차 캐즘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이 예고한 ‘고관세 정책’은 미국에 생산시설을 구축하지 않은 소재업계에겐 대형 악재로 다가올 수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시장이 생존경쟁에 접어들면서 옥석 가리기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오는 2026년까지는 허리띠 졸라메기에 성공한 업체들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