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형 약물 전달 기술, GLP-1에 접목···후발주자 한계 넘으려면
GLP-1 비만약 열풍, 투여 주기 확대 '각축전' 펩트론·인벤티지랩·에이프릴바이오 등 지속형 약물 전달 플랫폼 빅파마와 기술이전 모색 GLP-1 계열 약물에 플랫폼 기술 적용 연구 활발
[시사저널e=최다은 기자]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제제 계열 약물에 지속형 약물 전달 기술 플랫폼을 적용하는 연구를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GLP-1 작용제의 잠재력을 확장하기 위해 다양한 적응증 연구를 전개하자, 이들과 협업할 수 있는 접점을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펩트론을 비롯해 인벤티지랩, 에이프릴바이오가 자체 보유 중인 지속형 약물 전달 기술을 GLP-1 계열 약물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를 전개하고 있다. 전 세계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GLP-1 제제가 당뇨병과 비만 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꿀 약제로 평가되자, 빅파마들에게 관련 플랫폼 기술을 수출하는 사업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시장에 출시된 GLP-1 제제 약물은 비만치료제로 쓰이는 노보노디스크의 ‘삭센다(성분명 리라글루티드)’와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티드)’,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성분명 터제파타이드)’ 등이 대표적이다. 이중 가장 먼저 개발된 삭센다는 1일 1회 피하 주사제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후 일라이릴리와 노보노디스크는 각각 투여 주기를 1주일로 늘린 마운자로, 위고비를 출시했다.
당초 삭센다는 당뇨 치료를 적응증으로 개발됐으나, GLP-1 호르몬 작용제의 체중 감소 효과가 확인되면서 비만치료제로 더 각광 받게 됐다. 빅파마를 필두로 GLP-1 계열 제제 패권 전쟁이 심화되면서 후발 기업들은 월 1회 제형 개발에 나서는 등 약물의 반감 주기를 늘리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지속형 약물 전달 기술을 보유한 국내사들에게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빅파마들과 손 잡고 플랫폼 기술이전 기대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펩트론, 인벤티지랩, 에이프릴바이오 등이 해당된다. 이들은 GLP-1 계열 약물에 자사의 지속형 약물 전달 플랫폼이 활용될 수 있도록 연구 중이다.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는 기업은 펩트론이다. 펩트론은 장기 지속형 약물 전달 플랫폼인 ‘스마트데포(SmartDepot)’를 보유한 기업이다. 지난 10월 공시를 통해 미국 일라이 릴리와 스마트데포 기술을 릴리의 펩타이드 약물에 적용하는 ‘플랫폼 기술평가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해당 계약은 릴리의 내부 연구개발, 펩트론과 후속 상업 라이선스 계약을 위한 목적으로 한정된다.
스마트데포는 약물을 체내에 투여한 후 제형으로부터 서서히 방출되게 한다. 약물의 혈중농도를 높게 유지하고, 약효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펩트론 고유의 기술이다. 위고비와 마운자로와 같은 GLP-1 계열 비만치료제는 통상 일주일에 한 번 투여하는 방식인데, 스마트데포를 적용하면 투여 주기를 한 달에 한 번으로 늘릴 수 있다.
인벤티지랩은 약물의 장기지속 효과를 낼 수 있는 제형화 제조 플랫폼인 ‘IVL-DrugFluidic®’을 보유하고 있다. 이달 세마글루타이드 마이크로 입자 및 이의 제조 방법에 대한 특허를 확보했다. 세마글루타이드는 식욕을 억제하는 체내 호르몬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GLP-1)에 작용하는 약물이다. 노보노디스크의 주 1회 투약 비만치료제 위고비의 주요 성분이 세마글루타이드다.
세마글루타이드뿐만 아니라 유한양행과 함께 일라이릴리 마운자로의 주요 성분인 터제파타이드에 대한 제형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이 밖에도 베링거 인겔하임의 펩타이드 신약물질에도 IVL-DrugFluidic 플랫폼을 탑재하는 연구가 전개되고 있다.
인벤티지랩 관계자는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에 대한 처방 최적화와 인비보(in-vivo)를 진행 중”이라며 “내년 중으로 임상 1상 진입을 목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베링거인겔하임과 공동개발을 통해 펩타이드 신약 물질에 대한 처방 최적화 연구도 착수했다”고 덧붙였다.
에이프릴바이오는 항체 라이브러리와 약효 단백질의 반감기를 늘리는 자체 ‘SAFA’ 플랫폼을 활용해 GLP-1과 접목시켜 MASH(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GLP-1 계열 파이프라인이 비만뿐만 아니라 MASH 치료에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착안됐다. 지난 5월 미국 신약개발사 에보뮨에 기술수출한 자가면역질환 신약후보물질 'APB-R3'에 GLP-1을 듀얼로 접목한 것이 특징이다. APB-R3는 에이프릴바이오가 SAFA 플랫폼을 적용해 만든 자가염증질환 치료제다.
현재 동물실험 단계에서 연구 중인 가운데 내년 상반기 안으로 관련 데이터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에이프릴바이오는 SAFA 플랫폼을 ADC(항체-약물접합체)에 접목하는 연구도 병행 중이다.
에이프릴바이오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간학회(EASL)에서 APB-R3가 MASH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전임상 결과를 발표한 적 있다”며 “약물 반감기를 늘리는 비만 치료 연구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성행하고 있는 만큼 적응증에 차별점을 두자는 전략을 세웠다”고 말했다. 이어 “APB-R3는 회사 파이프라인 중 SAFA 플랫폼이 적용된 대표적인 모델인데 GLP-1과 접목하기 위한 인비보를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GLP-1 계열 비만 치료제가 전 세계 비만 인구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후발주자들은 약물의 반감 주기를 더 늘려 시장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지속형 약물 전달 기술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는 이유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암젠은 월 1회 피하 주사 방식의 ‘마리타이드’를 임상 2상 단계에서 개발 중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약물의 반감기 확장과 시장 수요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보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상급종합병원 내과 전문의는 “약물의 투여 주기를 한 달로 늘릴 경우 환자 개인의 적정 투약 용량과 부작용에 대한 조절 주기도 길어지게 된다”며 “투약 편의성은 개선될 수 있으나 약물 투여 후 추적 주기도 늘어날 수 있어 마냥 시장성이 높아진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어 “약물 방출의 안정성과 대량 생산 가능 여부 등에 따라 각 회사별 기술 수요가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