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에 생산 중단”···세계 6위도 위태로운 韓 전기차 시장

현대차, 아이오닉5 생산라인 일시 휴업 “수요 둔화 탓” 7위 벨기에 바짝 추격···“전기차 더 안전하고 덜 부담돼야”

2024-11-05     최동훈 기자
아이오닉5가 울산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 사진=현대차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현대자동차가 주요 전기차(BEV) 시장인 한국의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 못 이겨 국내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내 소비자들이 차량 화재 우려와 고금리 기조 때문에 전기차를 기피해, 글로벌 6위 시장 규모를 갖춘 한국의 지위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전기차 아이오닉5를 생산하는 울산1공장 2라인을 이날부터 2주간 가동 중단할 계획이다.

현대차가 전기차 생산공정 가동 중단 사유로 신차 수요 둔화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 업체의 올해 전기차 판매 실적은 시원찮다. 현대차의 지난 1~10월 전기차 판매대수는 전년동기(6만87대) 대비 9.4% 감소한 5만4460대로 집계됐다.

전기차 중 유일하게 전년 대비 판매가 증가한 화물차 포터Ⅱ 일렉트릭 실적을 제외하면 같은 기간 감소폭이 26.0%로 확대됐다. 현대차 뿐 아니라 기아(-16.5%)와 수입차(-19.6%, 테슬라 실적 제외) 전기차 실적도 두 자리수 감소했다. 테슬라 코리아(2만4880대)가 전년동기 대비 109.5%의 큰 증가폭을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브랜드간 실적 추이 양극화가 심해졌다.

주요 국가별 전기차 판매 추이. / 자료=PwC

한국 전기차 시장 위축은 해외 주요국의 성장세와 대조된다. 경영 컨설팅 업체 PwC가 조사 분석에 따르면 지난 1~10월 한국 전기차 판매대수는 전년동기(11만4402대) 대비 4.8% 감소한 10만8923대다. 중국 426만대, 미국 90만1224대, 독일 27만6390대, 영국 26만9931대, 프랑스 21만6840대에 이어 6위다.

이 중 보조금 지급 중단으로 인해 신차 구매 부담이 커져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동기 대비 28.6% 감소한 독일을 제외한 상위권 국가 모두 증가폭을 보였다. 7위 시장인 벨기에가 신차 뿐 아니라 중고 전기차에 구매 보조금을 지급하고,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는 등 제도적 지원하며 40%대 높은 성장폭을 나타냈다. 한국과 벨기에의 전기차 판매대수 격차는 올해 1만2644대로, 작년 같은 기간 4만5706대에 비해 크게 축소됐다. 벨기에가 올해 한국을 추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전기차 수요 감소가 자동차 산업 성장 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내 민관 주체들이 글로벌 자동차 산업 3강(强) 진입을 목표로 전기차 핵심기술 개발에 힘쓰지만, 신차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개발, 생산, 수요, 개발’로 이어지는 산업 선순환을 일으키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권오찬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책임위원은 “시장 침체가 지속되면 국내 제작사의 전기차 투자 부담이 증가한다”며 “부품업체 전동화 전환, 국내 미래차 전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8월8일 오전 인천 서구 한 공업사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벤츠 등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에 대한 2차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소비자, 화재 우려구매 부담에 외면···“산업 성숙에 힘써야”

국내 전기차 수요 감소 원인으로 전기차 화재 우려, 고금리 기조에 따른 구매 부담 확대 등이 꼽힌다. 지난 8월 인천 청라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 사건 이후 차량 안전성에 대한 고객 우려가 확산됐다. 전기차사용자협회가 소비자를 설문한 결과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화재에 더 위험하다’는 응답 비중이 60.6%에 달했다.

구매 부담이 여전한 점도 수요 회복의 걸림돌로 지목된다. 지난달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 인하 결정에 따라 신차 구매 금융의 금리 하락이 예상되지만 카드사, 캐피탈사의 움직임은 아직 눈에 띄지 않고 있다.

민관 주체들은 연말까지 남은 기간 전기차 판매고를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전기차 판매 업체들은 신차 구매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판촉 전략을 다각도로 펼치고, 정부는 화재 우려 불식을 위한 정책 강화에 힘 주고 있다.

현대차가 지난 9월 3일 사양 구성, 가격을 하향 조정해 출시한 실속형 전기차 이밸류 플러스(E-Value+) 트림 3종. / 사진=현대차

현대차, 기아는 배터리 용량을 낮추고 사양을 간소화한 실속형 모델이나 비교적 작은 차체의 저가형 모델을 출시하고 있다. 현대차 이밸류 플러스, 기아 EV3가 대표 사례다. KG모빌리티도 중국제 배터리와 셀투팩(Cell-to-Pack) 등 신기술을 탑재해 상품성을 확보하고 가격은 동급 대비 낮춘 토레스 EVX 등 전기차를 출시했다.

정부는 지난 9월 전기차 화재 안전관리대책을 마련하고 후속 조치를 부처별 시행하는 등 안전 확보에 정책 주안점을 뒀다. 조달청은 지난달부터 신축되는 공공건물의 전기차 충전시설을 지상에 설치하는 방안을 개시했다. 국토교통부도 같은 달 배터리 안전성을 정부가 직접 시험, 인증하는 배터리 안전성 인증제 시범사업을 개시했다.

생명, 재산 안위와 직결되는 차량 안전에 민감한 국내 소비자들을 안심시킬 제도적, 기술적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또한 신차 구매 보조금 지급 여부로 시장 추이가 엇갈린 해외 사례에 비춰 국내 보조금 정책을 유지,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강남훈 자동차모빌리티산업연합회(KAIA) 회장은 “전기차 산업이 초기 보급 단계에서 다양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며 “산업이 성장하고 기술이 성숙하면서 많은 문제가 대부분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