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만화 덕후들의 성지가 된 '그래픽' 공간사용설명서
읽지 않으면 모르는 공간을 탐험하는 재미, 공간사용설명서 11
그래픽
만화책과 위스키를 좋아하는 두 사람의 운명 같은 조우. 서로 닮은 건축가와 의뢰인이 만나 자신들과 비슷한 취향을 지닌 사람이 모이는 아지트를 탄생시켰다. 어느 날 경리단길에 묵직한 존재감으로 등장한 그래픽. 이곳으로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유랩의 이슬 팀장과 떠났다.
이슬
김종유 소장이 이끄는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유랩U.lab입사 10년차가 된 팀장 디자이너. 오온의 건축 프로젝트와 유랩의인테리어 프로젝트 작업을 모두 겸한다. ‘그래픽'의 PM 을 맡았다. 늘 도전을 즐기는 유랩의 일원답게 최근에는 새롭게도예에 빠져있다.
마음 맞는 사람과 만난다는 작지만 큰 기적. 그 기적이 한적하던 경리단길에 사람들이 기다림을 감수하고 찾는 ‘그래픽@graphic.fan’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가 공간 디자이너 김종유에게 오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김종유 소장은 이전까지 청담동 미엘과 같은 F&B 공간을 주로 설계한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유랩의 대표 소장. 당시 15년간 운영해 온 유랩에 이어 건축사무소 오온을 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단골 바 사장님이 한 사람을 소개해 줬다. 그때를 유랩 이슬 팀장은 이렇게 회상한다. “한남동에 ‘블라인드피그’라는 프라이빗한 위스키 바가 있어요. 그곳 사장님이 경리단길에 건물을 지으려 하는 사람이 있다고 소장님께 한번 만나보라 한 거죠. 서로 취향이 비슷해 보인다면서요. 지금 그래픽의 클라이언트였습니다. “실제 만남이 성사된 건 꽤 시간이 흐른 이후로, 의뢰인이 또 다른 건축사무소에서 온전한 설계 시안을 받은 시점이었다. 어쨌든 왜 이제 만났는지 모를 정도로 위스키, 책 취향이 똑 닮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다. 오랜 친구처럼 마음이 맞았던 둘. 결국 의뢰인이 기존 설계안의 비용을 지불하고 김종유 소장에게 그 공간에 만화방을 만들자고 새롭게 제안했다. 그렇게 오온 건축사무소의 첫 건축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당시 만화와 소설의 중간점에 있는 그래픽노블 장르의 책을 술과 함께 즐기는 곳은 흔치 않았던 터. 김종유 소장은 그에게 익숙한 공간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사람마다 책 읽기 편한 자세를 연구하는 것에서 시작해 건축 설계로까지 확장해 나갔다. 1층과 2층에는 그래픽노블을 주축으로, 3층에는 위스키 바 자리도 추가했다. 건물 내외장재로 쓰인 독특한 소재는 김종유 소장의 할아버지가 물려준 책에서 영감을 받았다. “어느 날 소장님이 작은 사전을 하나 들고 왔는데, 얼룩지고 습기 때문에 종이가 울긋불긋 일어났는데도 그게 얼마나 예뻐 보였는지 몰라요.” 이슬 팀장은 그때 ‘시간의 적층’이라는 콘셉트가 나왔다고 말한다. 세월의 흔적이 쌓이면서 멋스럽게 변한 책의 질감. 그 느낌을 건물에 구현하기 위해 도예 작가 문평을 섭외하고 소재도 개발했다. 그렇게 우둘투둘한 고서의 표면을 닮은 그래픽의 외관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멍석 느낌이 나도록 ‘사이잘삼’ 소재로 바닥재를 만들고, 빈티지한 느낌의 구로철로 선반도 제작했다. 여기에 거친 질감을 살려 페인팅한 벽까지 더해지자 어떤 책방에서도 볼 수 없던 검박하고 편안한 공간이 완성됐다.
처음 그래픽의 대표와 김종유 소장이 “술 마시는 만화방”을 만들자며 도원결의한 시점부터 완성까지 총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규모에 비하면 길다면 긴 기간이다. 그 사이 코로나19가 유행하며 문평 작가와 신소재를 만들던 중국 공장이 1년 넘게 연락이 끊기기도 했다. 그런 어려움에도 비로소 세상에 나온 그래픽은 등장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마치 이러한 공간이 도시에 등장하길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기다렸던 것처럼 말이다. 김종유 소장은 이런 도전을 가능케 한 클라이언트에게 프로젝트 마지막 단계에서 이광무 웹툰 작가가 만든,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단편 만화 <그래픽>을 선물했다. 이 모든 과정을 돌이켜보면, 아무래도 취향이 일치하는 상대를 만난다는 건 인생에서 선물과도 같은 일이 분명하다. 그래픽은 현재 위례에 2호점을 준비하고 있다.
흘러가는 시간은 절대적이죠.
이곳도 철저하게 깨끗이 관리된 공간으로 남기보다는 지금보다
금속은 부식되고, 바닥은 더 이염되길 바라요.
언젠가 40대가 되고 50대가 되어도,
나와 함께 나이 든 이 공간에서 지나간 세월을 느낄 수 있게요.
그러니 이 기사를 읽는 지금이 바로 그래픽을 방문하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그래픽
ARCHITECTURE 오온oonn.co.kr INTERIOR 유랩designstudioulab.com
위치 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39길 33이태원동
운영 시간 화·수·금요일 오후 1시~오후 11시, 목·토·일요일 오전 11시~오후 11시
editor 권새봄
photographer 김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