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삼성 파운드리 분사說, AI 시대에 일축되나

맞춤형 전략으로 탈바꿈 메모리·파운드리 시너지 강조

2024-09-09     고명훈 기자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삼성전자와 TSMC의 파운드리 격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반도체 호황과 불황에 상관없이 점유율 차이는 50%포인트 안팎을 유지한다. 업계 1위와 2위 간 간격이 너무도 벌어져 있어 경쟁 관계라 말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종합반도체회사(IDM)인 삼성전자는 줄곧 파운드리만 고집해온 TSMC의 오랜 업력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파운드리 분사설이었다. 주력 사업인 메모리사업부, 칩 설계를 담당하는 시스템LSI사업부와 별개 조직으로 파운드리 독립법인을 출범해 운영하는 것이다. 주요 고객사인 팹리스 기업들과 경쟁하지 않겠단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줘야만 파운드리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고객사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파운드리는 고객 대응이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과 필요한 부분을 잘 받아들이고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해야 하는 특징이 있다. 반면, 메모리는 용량을 늘리고 칩 크기를 작게 만드는 기술이 있으면 제품을 다양화할 필요 없이 고객사가 필요한 만큼 대량 양산만 하면 된다. 고객사 대응 측면에서 그렇게 힘을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그래서 늘 갑의 위치였다. 과거 4나노 공정에서 수율 논란이 제기됐을 당시에도 이런 부분이 가장 큰 문제가 됐다. 당시 삼성전자 계약 상대 업체의 실무진들 얘기를 종합해보면 일단 수주부터 받고 이후 물량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나중에 와서 조정하고 고객사에 통보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파운드리 사업자는 팹리스와의 계약 이행에 있어서 철저하게 계획을 짜고 합리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삼성전자는 이런 원칙을 등한시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창립 때부터 파운드리만 일관하면서 늘 고객사가 원하는 대로 맞추며 신뢰를 쌓아온 TSMC와는 다른 행보였다.

이처럼 메모리와 파운드리는 같은 반도체 분야라도 사업 특성과 영업 환경이 매우 다르다. 메모리를 주력으로 해온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 후발주자로 나서면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배경이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내부에서 파운드리 부문을 분사해야 한다는 목소리 작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왔던 얘기 중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엔 이런 목소리가 조금씩 잦아드는 분위기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들어와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하면서다. 메모리 제조사의 AI 반도체 주력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파운드리, 2.5D 첨단 패키징과 엮어 턴키(Turnkey) 서비스로 제공한단 것이 최근 삼성전자 전략의 주골자다. 파운드리 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됐던 종합 반도체 회사의 성격을 오히려 장점으로 살려 AI 시대에 대응하겠단 것이다.

AI 시장의 성장이 반도체 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 중 하나가 메모리, 시스템반도체 등 분야에 상관없이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가 모든 영역에서 사업 트렌드가 됐단 것이다. HBM 자체로도 이미 세대를 거듭할수록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성격이 강해진다.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신제품 일정과 사양에 맞춰 메모리 기업들도 HBM의 대역폭과 성능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도 여기에 발맞춰 내세운 전략이 바로 턴키 서비스다. 파운드리와 메모리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조합해 시너지를 창출하겠단 것이다.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은 지난 7월 서울에서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기조연설에서 “변화하는 시장 수요에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삼성 파운드리는 오퍼레이션 최적화를 통한 최상의 솔루션을 제공한다”며 “고객들이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선 생산능력(캐파) 확장 못지않게 전 제품의 주기를 줄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으며, 여기에서 삼성 파운드리만의 확실한 경쟁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파운드리와 메모리, 패키지 제조 역량을 단일 조직에서 통합해 운영할 수 있으며 이런 장점을 바탕으로 최대한 효율적이면서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의 이런 판단이 맞는지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내부에서도 우선은 이 방법을 믿고 갈 수밖에 없단 분위기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에서 잘 해줘야만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재기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국내 반도체 종사자들이 AI 시대에서 삼성전자가 성공하기를 손 모아 바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