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발열 관리해줄 ‘액침냉각’ 기술···완성차·조선업계도 '눈독'
액침냉각, 데이터센터 중심 적용 확대 직접 비전도성 액체 담가···공랭식 대비 전력 소모 50% 2040년 42조원 규모로 확대 전망 전기차 배터리·선박용 ESS 등 적용 예상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전기차 화재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액침냉각 기술 적용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액침냉각 기술은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열 관리에 이어 배터리 화재 가능성을 줄여줄 수 있어 해당 기술을 적용하는 산업군이 다양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를 중심으로 액침냉각 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모두 액침냉각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이다.
액침냉각은 데이터센터용 서버,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 배터리 등을 전기가 통하지 않는 비전도성 액체에 담가 열을 식히는 차세대 열관리 기술이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액침냉각 시장은 2020년 1조원 미만에서 2040년 42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유 4사는 단기적으로는 데이터센터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한다. AI 열풍으로 데이터센터가 급증하면서 이른바 ‘열 관리’가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차세대 AI 그래픽처리장치(GPU)인 ‘블랙웰’ 사용을 위해서는 액침 냉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기존 공랭식 냉각으로는 발열 억제에 한계가 있어 더 효율적인 열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통상 데이터센터 전력 소모의 45% 정도가 발열 억제에 쓰이는데, 액침냉각 기술을 적용하면 기존 공랭식 대비 전력 소모를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 다만 아직은 많은 업체들이 상용화 전 단계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누가 얼마나 빠르게, 저렴하게 냉각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관건”이라며 “초기 설치 비용이 많이 들고 관리가 복잡해 해당 기술을 적용하고자 하는 데이터센터 대부분이 아직 시범 운영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열 관리는 AI 업계를 넘어 자동차 업계서도 주요 과제가 되면서 기술 확보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인천에서 발생한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화재 사고 여파로 소비자 불안감이 커지면서 전기차 화재 방지 기술이 곧 완성차 업계의 경쟁력으로 부상하면서다.
일례로 현대차그룹 계열사 현대위아는 이달 신입사원 채용을 통해 ‘열관리 시스템’ 관련 인재를 집중적으로 채용했다. 내년 하반기 통합 열관리 시스템 양산을 위해서다.
액침냉각 제품 출시에 나선 정유사들도 시장 개화에 앞서 대응에 나선다. 국내 액침냉각 기술 선도업체인 SK엔무브는 전기차 배터리용 ‘냉각 플루이드(액체와 기체를 아우르는 용어)’ 개발을 논의 중이다.
기존에는 전기차 모터 과부화를 막고 전비를 향상시키는 ‘전기차용 윤활유’ 개발에 방점을 찍었다면, 향후에는 전기차에서 배터리의 열을 직접 제어하는 시장이 커질 것이란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SK엔무브 관계자는 “현재는 전기차 배터리용 냉각 플루이드를 개발하기 위한 초기 논의 단계에 있다”고 했다.
업계는 ‘선박용 ESS’ 열 관리 시장도 새로운 먹거리로 보고 있다. 글로벌 환경 규제가 강화하면서 탄소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추진선박’ 시대가 다가오고 있어서다.
한화오션을 비롯해 HD한국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업계는 전기추진선박 건조를 위해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다. 향후 전기추진선박에 탑재될 배터리 화재 관리 방안 마련을 위해선 액침냉각 기술 적용이 필수적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SK엔무브는 지난해부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함께 한화오션의 전기추진선에 탑재될 선박용 ESS 액침냉각 기술 개발에 나섰고, 최근 상용화 전 단계에 이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전기차 배터리와 선박용 ESS 등 신시장에 액침냉각을 본격적으로 적용하는 데 있어 기술장벽이 커 당장은 상업화가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액침냉각을 적용하면 전기차 공차중량이 크게 증가해 주행거리가 감소한다는 단점이 있다”면서 “무게와 부피를 최소화하면서 제대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