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인간 관계를 넘어 경제계에도 필요한 안전이별
상속·불편한 동거로 골머리 썩는 이해관계자 종잡을 수 없는 집안싸움에 속 끓는 일반 투자자 ‘헤어질 결심→안전이별’ 공식화 필요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안전이별, 연인과의 이별 과정에서 스토킹이나 감금이나 구타, 협박 등과 같은 폭력 없이 본인의 안위와 자존감을 지킨 채로 헤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다.
인간관계를 넘어 경제계에도 안전이별이 필요한 시점이다. 상속이나 불편한 동거로 이해 관계자의 골머리를 썩게 하는 상황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어서다.
효성이 대표적이다. 효성 일가는 후계 구도를 두고 형제의 난이 벌어지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차남인 조현문 전 부사장이 가족과 의절했고, 보유 지분을 전략 매각하며 경영에서 멀어졌다.
조석래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난 후 조현준 회장과 삼남 조현상 부회장은 계열분리를 통해 형제경영에 돌입했다. 그런데 조현문 전 부사장이 최근 다른 형제들과 화해하겠다며 손을 내밀었는데,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끝난 줄 알았던 형제간 다툼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큰 상황이다.
조석래 명예회장이 조현문 전 부사장에도 효성티앤씨와 효성중공업, 효성화학 등의 지분을 상속해서다. 조 전 부사장은 이를 공익재단 설립 용도로 활용해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입장이다.
겉으로 보면 경영에서 멀어져 공익적 목적은 물론, 형제들과의 화해의 제스처로 보인다. 하지만 새로 설립될 재단이 효성 계열사 지분을 가진 상태에서 조현문 전 부사장이 이사장이나 대표직을 수행한다면 재차 경영에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화해나 사회환원 등의 목적이 순수한 의도로 읽히지만은 않는 이유다.
이외에도 재계에는 오랜 다툼이 진행 중인 집안이 많다. 신동빈 롯데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10년 넘게 경영권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영풍과 고려아연도 수십년간의 동업 생활을 청산하고 ‘남남’의 길을 걷기로 했지만 법정 싸움이 벌어지는 등 ‘안전이별’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물론 2004년 LG와 GS가 동업 관계를 청산하면서 어떠한 잡음도 나오지 않아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평가 받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드문 케이스다. 대부분 법적 다툼으로 이어져 오랜 시간 갈등의 골만 깊어진다.
이 과정에서 총수 일가뿐만 아니라, 일반 투자자도 어려움을 겪는다. 종잡을 수 없는 집안 싸움에 주가 역시 널뛰는 현상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오너들은 항상 회사의 주인은 임직원과 주주들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족간 불화로 주인을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선 최대한 빠르고 깔끔하게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경제계에도 안전이별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