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 필리조선소 이어 오스탈 인수 추진 계속···美 MRO 사업 '더 크게'
역내 최대 도크 필리조선소 인수··· 美 전초기지 확보 '첫발' 수출영토 확장 계획 지속···MRO 넘어 함정 건조까지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오스탈 인수를 포기한 게 아니다. 계약 추진을 위해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최근 한화그룹 관계자는 “필리 조선소 인수로 미국 내 생산시설 확보 목표를 달성한 것이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지난달 20일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 조선소 지분 100%를 1억달러(약 1391억 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필리 조선소는 노르웨이 아커(Aker)의 미국 소재 자회사였다가 한화로 소속을 옮기게 됐다. 국내 조선사의 첫 미국 조선소 인수 사례다. 필리조선소 뿐만 아니라 호주 오스탈 인수를 통해 오스탈이 보유한 미국 조선소까지 품겠다는 전략이다.
한화그룹이 미국 현지 생산시설 확보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미국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을 따내기 위해서다. 존스법(Jones Act)을 통해 미국에서 건조 혹은 상당 부문 개조된 선박에 대해서만 관내 상업 운항을 허용하고 있다. 이번 인수로 한화가 미국 함정 MRO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필리조선소가 보유한 다양한 사업 분야가 한화 측의 구미를 당겼다. 미국 내 필리 조선소가 건조한 대형 상선 점유율은 50%에 달한다. 상선 건조뿐만 아니라 미 해군 수송함의 수리·개조 사업도 담당한다. 미 교통부 해사청(MARAD)의 대형 다목적 훈련함, 관공선을 건조한 경험도 있다. 도크도 미국 내 최대 규모다.
오스탈도 비슷한 장점을 가졌다. 오스탈 조선소는 호주뿐 아니라 베트남, 필리핀, 미국 등에도 조선소를 운영 중이다. 미국 해군 함정을 수주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주력으로 건조하는 특수선은 연안전투함(LCS) 원정고속수송함(EPF), 다목적상륙정(LCU) 등이 있다.
이외에도 오스탈은 선박 유지보수 사업도 병행 중이다. 오스탈이 보유한 미국 도크를 MRO 사업 현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MRO 시장은 거대하고 성장성도 크다. 시장조사업체 모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해군 함정 MRO 시장 규모는 올해 577억6000만달러(약 79조7100억원)에서 오는 2029년 636억2000만달러(약 87조8000억원)로 확대될 전망이다. 회사가 당장 노리고 있는 미국의 함정 MRO 시장 규모는 연간 20조원에 달한다. 전 세계 시장의 4분의 1 규모다.
업계는 국내 조선업계의 MRO 사업 실적이 빠르면 올해부터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화오션은 올해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MRO 대상은 지원함 위주가 될 것이다. 빠르면 올해 상반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HD현대 역시 미국 함정 MRO 사업 진출을 위한 전략을 구상 중이다. 다만 한화오션이 필리 조선소를 인수하면서 계획이 지연됐다는 평가다. 앞서 HD현대중공업은 이번에 한화그룹이 인수한 필리조선소와 미국 정부의 함정·관공선 MRO 사업에 대한 업무협약(MOU)를 맺기도 했다. 한화 측이 발 빠르게 대응하며 HD현대중공업의 구상이 물거품이 됐다.
한화그룹의 최종 목표는 미국 전투함을 만드는 것이다. 우선 한화오션은 시설 보안 인증(FCL)을 획득해 미국 주요 해군 함정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시설 보안 인증까지 수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빨라도 오는 2027년까지는 준비 과정을 거쳐야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미 정부와 직접 납품계약을 체결하는 데 현지 업체 인수가 핵심 요건”이라며 “미국 획득사업 제안서 평가항목에는 현지업체를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요건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화의 오스탈 인수 추진 작전은 예상보다 지지부진하게 흘러가고 있다. 앞서 오스탈은 두 차례에 걸쳐 한화오션의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 지난해엔 몸값을 이유로, 올 3월에는 방위 계약 관련 소유권 등을 고려할 때 승인 가능성이 제한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업계는 오스탈의 ‘냉랭한 태도’가 몸값 높이기를 위한 행보라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적인 M&A 과정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며 “오스탈 인수를 통해 최종적으로 미국 함정 시장 진출을 노려볼 수 있어 한화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