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시세조종’ 카카오 재판···카카오·원아시아 공모 여부 공방
배재현 전 대표 “공모관계 지적, 근거 없어”
[시사저널e=김용수 기자]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혐의를 받는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와 카카오법인이 사모펀드 운용사 원아시아파트너스와의 공모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은 배 전 대표와 강호중 카카오 투자전략실장 간 통화 녹취록 등을 근거로, 원아시아와 카카오가 양사 간 자회사 지분 투자를 단행하는 등 긴밀한 협력 관계에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특히 원아시아 자회사 그레이고(과거 카카오 계열사)와 헬리오스가 하이브의 SM 주식 공개매수 과정에서 SM 주식을 고가 매수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31일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5형사부(부장판사 양환승)는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 및 카카오 법인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관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당초 이날 예정됐던 김지예 카카오 투자전략팀장 상무 등에 대한 증인신문은 증인들이 불출석한 탓에 연기됐다.
◇ 배재현 “카카오 그레이고 매각, 사업적 판단···공모관계 아냐”
배 전 대표 측 변호인은 카카오와 원아시아 간 시세조종 공모 관계에 대한 의혹을 부인하는데 대부분 시간을 할애했다. 검찰은 ‘주고받기식 거래’를 한 카카오와 원아시아 간 밀접한 관계가 시세조종 공모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2017년 설립된 그레이고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지분 약 40%를 보유한 자회사로, 연예인들이 의류나 화장품 브랜드와 제휴해 직접 상품을 소개하는 상거래 플랫폼 기업이다. 매년 적자가 이어지며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골칫거리였는데, 원아시아가 2022년 1000억원을 들여 경영권을 인수했다. 이후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원아시아가 최대 주주인 방송 제작사 아크미디어에 350억원을 투자했다. 핵심 피의자인 이준호 카카오엔터 투자전략부문장은 그레이고의 대표로 재직하기도 했다.
배 전 대표 측 법률대리인은 “그레이고와 아크미디어 간 거래가 모종의 거래가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 같다. 우선 그레이고 투자는 카카오 계열사였던 그레이고의 경영권을 원아시아에 넘긴 것이다. 투자한 회사들이 투자 가치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사업적인 의사결정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레이고나 아크미디어에 대한 투자는 투자 주체와 투자를 받는 주체가 각각 검토하고 서로의 이익에 맞게 협상이 이뤄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레이고와 아크미디어에 대한 투자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하는 것”이라며 “이 사건 기소 대상인 카카오와 배 전 대표가 검토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SM에 대한 주식 매수와 연결해 그 전에 이미 카카오와 배재현, 원아시아와 지창배 원아시아 대표 간 긴밀한 협력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은 근거 없는 추측”이라고 덧붙였다.
◇ 檢 “카카오·원아시아 공모관계, 배재현·강호중 통화서도 확인”
반면 검찰은 그레이고와 아크미디어에 대한 투자가 같은날 이뤄졌음에도 별개로 체결된 것처럼 날짜가 조작된 점, 배 전 대표와 강호중 카카오 투자전략실장 간 통화 녹취록 등을 통해 카카오와 원아시아 간 공모 관계가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현재 검찰은 그레이고가 하이브의 SM 주식 공개매수 과정에서 SM 주식을 고가 매수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검찰은 “그레이고와 아크미디어의 각각의 투자 관계가 별개의 시점에 독자적인 판단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같은날 동시에 체결되면서 마치 다른날 별개로 체결된 것처럼 날짜를 조작한 것도 증거로 확인된다. 또 공모 관계는 단순히 투자 액수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피고인 배재현과 강호중과의 통화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며 “원아시아 외에 수많은 사모펀드도 카카오에 투자했다고 하는데, 하이브의 공개매수 기간 SM 주식을 매수한 다른 투자자는 없는 것으로 안다. 원아시아에 경영권을 행사하는 지창배는 배 전 대표와 협상을 한 뒤 SM 주식을 매수한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 부분은 이후 이준호와 지창배에 대한 증인신문에서 명확히 드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초 이날 예정된 김지예 카카오 투자전략팀장 상무에 대한 증인신문은 김 상무가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불출석하면서 연기됐다. 김 상무는 배 전 대표와 같은 CJ그룹 미래전략실 출신으로, 배 전 대표가 2016년 카카오에 합류할 당시 함께 이직할 만큼 신뢰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상무는 배 전 대표와 함께 투자전략실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빅딜팀’을 이끌었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다.
한편 배 전 대표와 카카오 법인은 지난해 2월 SM 경영권 인수전 경쟁사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원아시아 등과 공모해 2400여억원을 투입, SM 주식 시세를 하이브 공개매수 가격 이상으로 조종한 혐의를 받는다.
하이브는 지난해 2월 10일부터 3월 1일까지 SM 주식을 공개 매수했다. 하이브는 공개매수 기간 9만원 안팎이던 SM 주식을 1주당 12만원에 매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SM 주당 가격은 12만원을 밑돌았다. 그러나 같은해 2월 15일 SM 주가가 12만원을 돌파하고, 공개매수 다음날 13만원을 기록했다. 공개매수 사실상 마지막 날인 2월 28일 SM 주가가 12만7600원으로 장을 마감하면서, 하이브는 경영권 인수에 실패했다.
배 전 대표 등은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가격을 높게 설정할 목적으로 총 553회에 걸쳐 고가 매수 등 시세 조종한 혐의를 받는다. SM 시세 조종 혐의와 관련 수사선상에 오른 경영진은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를 비롯해 배 전 대표, 김성수·이진수 전 카카오엔터 공동대표, 이준호 카카오엔터 투자전략부문장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