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이 지어 올린 협소주택

2024-05-29     Living sense

여느 자취인들처럼 2년마다 이사를 다니며 살던 직장인 이서현 씨.

36세, 이르다면 이른 나이에 내 집 마련에 성공한 그녀는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협소주택에 산다.

좁은 땅 위에 높게 솟아오른 이서현 씨의 귀여운 집.
취향에 맞는 가구를 신중하게 골라 꾸민 2층 주방. 펜던트 조명은 허먼밀러, 식탁은 허먼밀러 빈티지 제품으로 당근마켓에서 구매했다.

 

협소한 집, 큰 행복

작고 높은 3층집

빌딩 숲을 벗어나 이화여대와 작은 산을 곁에 끼고 있는 한적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이서현 씨가 지어 올린 작은 보금자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둥근 벽을 따라 유리벽돌을 가지런히 쌓은 3층 집. 놀라울 만큼 좁은 땅에 알차게 자리 잡은 이 협소주택은 2년 전 4개월에 걸쳐 완공한 서현 씨만의 작지만 큰 공간이다.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해본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계약이 끝날 때마다 이사를 다니는 일에 지쳐 있었어요. 원룸부터 오피스텔까지 안 살아본 집이 없다 보니 그저 내 집을 갖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죠. 하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아파트 값에 그냥 집을 직접 지어보자는 생각까지 하게 된 거예요.” 

주택살이를 꿈꾸며 집을 알아보기 시작한 그녀가 북아현동의 작고 오래된 단층집을 만나게 된 것은 운명 같은 일이었다. “보통 부동산 사장님들이 집을 보여주고 나면 하루, 이틀 생각할 시간을 주시거든요. 근데 이 집은 보고 돌아가자마자 꼭 계약을 하라고 재촉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운명인가 보다 하고 덜컥 사버렸죠(웃음).” 오래되고 낡은 단층 건물을 3층으로 증축하는 까다로운 공사는 협소주택만을 전문으로 하는 건축사무소를 만나 순풍에 돛 단 듯 진행됐다. 공간 구성과 자재, 컬러, 세부적인 구조까지 모두 서현 씨의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맞춤형 주택이었다. 1층엔 거실과 메인 욕실이, 2층엔 주방과 작은 테라스가, 3층엔 침실과 간이 화장실이 자리한다. 3층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작은 다락 겸 창고는 빔프로젝터로 영화를 보거나 친구들이 방문했을 때 머물기 딱 좋은 공간이라고. “층별로 공간이 나눠져 있어 다들 도가니(?)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하세요(웃음). 하지만 공간을 구성할 때부터 생활 패턴을 잘 반영해둔 터라 생각보다 집 안에서의 층 이동이 많지 않거든요. 저는 아주 만족하며 생활하고 있어요.”

알리버트 빈티지 거울과 브라운사의 디터람스 턴테이블을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 배치했다.
매그너스 올레센의 체어를 둔 1층 거실. 
토넷의 소파 테이블도 빈티지 제품
2층의 주방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본 풍경. 왼쪽의 문밖으로 작은 테라스가 자리하고 있다

서울 주택살이 

늘 소란하고 복잡한 도심과는 달리 언제나 평화롭고 고요한 기운마저 감도는 동네. 4개월간의 증축 공사 내내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집 앞에 내놓은 화분에 대신 물까지 주는 이웃들. 서현 씨는 이곳의 모든 점이 마음에 든다.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도심 속의 정겨운 시골 마을 같다고. “저는 집 앞에 둔 화분이 저절로 잘 자라는 줄 알았거든요(웃음). 알고 보니 옆집에서 제 화분에 대신 물을 주고 계셨더라고요. 혼자 산다는 걸 알고 이웃들이 반찬이나 요리를 나눠주시기도 해요. 오피스텔에 살 때는 느끼지 못했던 정을 느끼면서 살고 있답니다.” 

1층 8평, 2층과 3층 각 5평씩, 3층을 다 더해도 18평 남짓의 작고 귀여운 집. 건축법과 제도가 명확해지기 전 지어진 구옥의 경우 측량을 해보면 토지보다 건물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거나 건물이 도로를 침범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서현 씨의 집 역시 그랬다. 때문에 안 그래도 작은 면적이 공사 과정에서 더 줄어들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기에 불편함은 없다. 3층에서 자고 일어나 2층에서 밥을 먹고, 1층의 욕실과 옷방에서 외출 준비를 하는 동선도 지낼수록 마음에 쏙 든다고. 길쭉한 사각형 형태라 거실 맞은편에 복도처럼 자리 잡은 공간을 옷방으로 사용하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세탁기를 마주하게 되는 파격적인 구조지만 서현씨에게는 그간 거쳐온 어느 곳보다도 사랑스러운 집이다. 머무는 공간에 정을 많이 두는 편이라 이사를 다닐 때마다 늘 쓸쓸함을 느꼈던 서현 씨는 비로소 마련한 내 집과 동네에 이별할 걱정 없이 정을 쏟으며 지내는 중이다. 머무는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해 전셋집에 살 때도 늘 인테리어에 심혈을 기울였던 그녀는 내 집이 생긴 후로 집 꾸미는 일에도 더 진심이 됐다. 때가 되면 떠나야 한다는 걱정이 사라지니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고. 

“이 집에 살고 난 뒤부터 내가 원하던 라이프스타일이 뭐였는지, 어떤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지를 하나씩 깨닫고 있어요. 비싸고 큰 집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집에 살아야 행복하다는 것도요.”

다락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평소에는 접어 올려 닫아둔다.
무엇이든 작고 앙증맞은 집. 3층의 건식 화장실에도 아주 작은 세면대를 설치했다.
너의 귀여운 벽시계는 알레시  제품, 흰색 벽 수납장 유텐실로는 비트라 제품.
계절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3층의 직사각형 창문.

CREDIT INFO

editor     장세현
photographer     김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