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아가는 서울②] 치솟는 공사비에 새집짓기 ‘가다 서다’ 반복만

주택공급, 유휴부지 부족에 정비사업에 의존 재건축 규제 완화 불투명‧고금리 및 원자잿값 급등에 공사비 치솟아 행정절차 줄여 공사기간 단축하고 건설단가 낮출 건축공법 개발 지원 절실

2024-05-22     노경은 기자
유휴부지가 부족한 서울의 주택공급은 거의 대부분 재개발, 재건축 등 정비사업으로 이루어진다. 문제는 강화한 정비사업 규제가 풀리지 않고 있고 원자잿값 인상으로 공사비는 치솟다 보니 공급의 주체인 정비사업 조합이 사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업 추진도 안한 곳이 아닌 현재 사업을 진행 중인 사업장에 용적률 완화와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단기 공급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서울이 낡아가고 있다. 공시지가 기준 3.3㎡ 기준 4억원을 훌쩍 넘는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도 외벽이 갈라지고 페인트칠이 벗겨져 보기 흉측한 건물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 건축물, 특히 가장 노후비중이 높은 주거용 건축물이 새롭게 지어지지 못하고 낡아가는 주된 이유로는 정부의 규제 강화에 따른 인허가 지연, 종교시설 및 유치원 등의 이해당사자 갈등, 최근에는 건축비 인상에 따른 문제 등이 꼽힌다. 이는 인구유출과 도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정비사업의 진행을 가로막는 원인을 집중 분석하고, 도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서울은 유휴부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재건축·재개발을 통하지 않고는 새 아파트를 공급할 방법이 사실상 없는 게 현실이다. 서울 역시 신축 아파트 공급물량의 80~90%가 재건축·재개발·리모델링을 통해 풀리고 있을 정도로 정비사업을 통한 공급 의존도가 높다.

정부가 이와 같은 지역에 주택공급을 늘릴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공급주체가 되는 추진위원회 또는 조합이 사업을 마음먹고 추진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하는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편([낡아가는 서울①] 외벽에 금가고 주차난에 허덕···둘에 하나 꼴로 30년 넘은 건물)에서 다루었듯 리모델링은 갈수록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분야에선 정부가 대통령선거 당시 공약을 통해 규제 완화 방침을 밝혔지만 규제 완화가 투자자 유입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야당 측 반대는 여전하다. 지금의 여소야대 정국에서는 신속한 재건축 추진의 방해요소인 초과이익환수제,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 패스트트랙 도입을 위한 도시정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이 어려워 보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사비마저 치솟으며 조합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KOSIS)이 밝힌 올해 3월 기준 건설공사비 지수는 154.8이다. 3년 전인 21년 1월 지수가 120이었던 점에 견주어보면 3년 새 30%가량 오른 셈이다. 건설업계에서는 모든 지수가 그렇듯 실제 현장 분위기가 반영이 덜 돼 그 변동폭이 적다고 말한다. 실질적으로 50% 안팎으로 올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구 청담건영아파트 조합은 지난달 말 조합원 총회를 열고 3.3㎡당 평균 공사비를 당초 687만원에서 1137만원으로 65.5% 증액하는 내용의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공사비 총액은 약 982억원에서 1708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서초구 신반포22차 재건축 조합 역시 지난달 중순 총회를 열고 3.3㎡당 공사비를 569만원에서 2.3배 가량 올린 1300만원으로 증액하기로 의결했다. 이로써 총 공사금액은 약 576억원에서 1316억원으로 늘어났다.

그나마 경제적 여력이 있는 강남·서초권은 증액이라도 하며 사업을 이어나가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그렇지 못한 곳도 있다. 장기화되는 고금리에 PF 부실 위험마저 커진 상황이어서 총 사업비와 예정 추가분담금을 받아든 재건축 사업장 일부는 사업을 멈추거나 가다 서다 하며 공급시기는 더 멀어져가는 것이다.

도시건축혁신 공공기획 시범사업 대상지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는 현재 전용면적 31㎡ 소유자가 전용 84㎡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약 5억원의 분담금을 추가로 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는 최근 실거래가(5억1500만원)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에 조합은 진통 끝에 결국 시공사와 계약을 해지하고, 내년 초 시공사 재선정에 나설 계획이다. 공사비 급등으로 사업이 당초 계획한 일정보다 늦어지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 인허가 주택공급 실적 연평균 실적과의 비교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이러한 까닭에 지난해 서울의 주택공급과 관련한 모든 실적은 최근 10년 평균값 대비 큰 폭으로 곤두박질쳤다. 작년 한 해 동안 서울의 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3만8633호인데, 이는 지난 10년간의 연평균인 7만4416호에 비해 48.0% 급감한 것이다.

인허가가 줄어들었으니 착공 역시 감소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간 한해 평균 착공물량은 7만4867가구였는데 지난해에는 2만7812가구로 62.9%나 쪼그라들었다. 준공 역시 지난해 4만1218가구가 생겨났는데 지난 10년간 평균값이 7만2719가구였던 점에 견주어보면 43.3%나 줄어든 수준이다. 인허가와 착공 실적은 주택시장의 선행지표 역할을 한다. 인허가와 착공이 줄어들면 아파트 건축 기간인 2~3년이 지나고 난 뒤 공급부족이 두드러지며 집값이 급등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수요대비 공급이 안정적이어서 집값 급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적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2~3년 뒤 주택 노후화와 공급부족에 따른 심각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는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때문에 공사기간을 줄일 수 있도록 행정절차를 간소화해 주고, 건설단가를 낮출 수 있는 건축 공법 개발을 지원하는 등의 방법으로 공사비와 추가분담금을 줄여주면 공급의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사업을 추진하기도 전인 곳을 타깃삼기 보다는 이미 궤도에 오른 정비사업장에 용적률 상향과 같은 인센티브를 주는 게 단기 공급효과를 내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입장도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 김지혜 연구위원은 “서울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고 평가되는 만큼 공급 회복을 위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며 “공사 단절 최소화를 위해 공공에서 조정 전문가를 파견하거나 공사비 검증 역할을 강화해 주택사업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10여년 간 서울 아파트 착공수 추이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