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의 결단, '감흥'이 떨어지는 이유

강 회장 "중대사고 CEO 연임 제한"···내부통제 강화 농협은행장, 중앙회장 바뀌면 대부분 교체돼 "어차피 바뀔텐데···인사권 행사 명분 만드나" 해석 중앙회가 계열사 인사 좌우하는 구조부터 개선해야

2024-05-16     유길연 기자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최근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이 중대사고가 발생한 계열사는 대표이사(CEO)에게 책임을 물어 연임을 제한하겠다는 안을 발표했다. 자회사의 내부통제 체제를 강화해 소비자 피해를 막겠다는 의지다. 최근 농협은행이 대규모 배임 사건에 휘말리는 등 각종 금융사고에 계열사들이 이름을 올리자 내린 결단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중앙회장의 발언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이석용 농협은행장은 굳이 금융사고 때문이 아니더라도 올해 말에 교체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간 중앙회장이 교체되면 농협은행장은 보통 임기가 남더라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 2020년 이성희 전 중앙회장이 취임하자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이대훈 전 농협은행장이 사임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CEO 연임 제한 지침을 내면 오히려 중앙회장의 은행 인사권 행사에 대한 명분만 만든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농협의 지배구조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앙회장은 공식적으론 명예직이지만 사실상 전 계열사의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다. 농협의 지분구조는 ‘중앙회→금융·경제지주→계열사’ 순으로 이뤄져 있다. 이 구조를 보면 중앙회가 직접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농협금융지주의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타당하다. 

문제는 농협금융에 속한 은행, 보험 등 계열사의 인사도 중앙회가 사실상 좌우한다는 것이다. 각 계열사의 기타비상무이사 자리에 금융업 경험이 없는 지역농협 출신 인물을 보내 임원 인사에 중앙회의 뜻을 관철시키고 있다. 모기업인 농협금융의 의견은 ‘패싱’당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금융감독원이 정기검사를 통해 농협금융의 지배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겠다고 한 이유다. 

지난 3월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선임과정에서 중앙회와 농협금융이 정면 충돌한 사건은 농협 지배구조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다. 다른 계열사와 달리 중앙회는 그간 NH투자증권 인사에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강 회장 취임 직후 증권 계열사 CEO 선임에도 개입하려고 하자 농협금융과 마찰을 빚은 것이다. 

중앙회가 금융 계열사 인사에 직접 개입하면 해당 기업의 경영에 있어 ‘금융 논리’가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최근 논란이 된 농업지원사업비 문제가 대표적인 예다. 농업지원사업비는 농업농촌농업인 지원을 위해 중앙회에서 농협은행 등 계열사에 영업수익 또는 매출액의 2.5% 범위 안에서 부과하는 비용을 말한다.

그런데 계열사들은 매출이 감소하거나 자본 여력이 줄어도 농업지원사업비를 오히려 늘렸다. 여기에 배당마저도 중앙회에 대거 올려보냈다. 농민 지원을 이유로 재무건전성이란 금융적 개념을 무시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감독원도 농업지원사업비가 객관적인 기준 없이 책정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사회 전문성 문제도 계속 지적된 사안이다. 금융업 경험이 없는 인물들이 이사회에 자리를 맡고 있기에 경영진에 대한 견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농협손해보험엔 중앙회 출신 인물이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리스크관리위원으로 임명돼 있다.  

중앙회장이 조직 수장으로서 내부통제 강화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분명 환영받을 일이다. 하지만 그간 꾸준히 지적돼온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오해는 계속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