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대책-45] “출산·육아도 경쟁···사회적 압박 그만 받고 싶어”
‘출산≠리스크’ 사회문화적 인식 변화 우선 이민정책 논의도 활발해야
[시사저널e=시사저널e 기자] 대한민국이 위기를 맞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출산율은 0.66명까지 감소했다. 이대로 가면 2750년에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세계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다시 우렁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100명의 입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되살릴 방법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학업과 취업, 결혼까지. 이제는 그만 압박받고 싶다.”
결혼 3년 차인 30대 직장인 남성 정지만(35세·가명)씨는 딩크(맞벌이 무자녀 가정)를 결정한 배경을 놓고 이같이 말했다. 학창 시절부터 이어진 경쟁과 시험에 지쳤다는 정씨는 ‘자식 농사’는 또 다른 사회적 압박으로 느낀다며 더 이상 스트레스 없는 삶을 지향한다고 했다.
그는 SNS 발달에 따른 비교 대상의 확대로 출산과 육아 역시 또 다른 경쟁으로 여겨지고 있다면서 출산이 리스크란 인식이 바뀌지 않고선 출산율이 회복될 수 없다고 진단했다.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딩크족의 비중은 2018년 21.7%, 2019년 23.4%, 2020년 25.8%, 2021년 27.7%, 2022년 28.7%로 꾸준히 늘었다. 이는 혼인 신고를 한 지 5년이 되지 않은 신혼부부 중 맞벌이를 하면서 자녀가 없는 부부의 수치다.
Q.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육아와 출산은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숙제다. 학창 시절 학교와 학원을 돌며 밤늦게 귀가했던 시절이 너무 숨 막혔다. 학업 성적이 나쁘면 소화불량에 걸렸고, 심각하면 구토를 하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해도 끝이 아니더라. 취업을 위한 또 다른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결혼도 온전히 내 의사로 했는지도 의문이 든다. 결혼 정년기란 분위기에 이끌려 선택한 것 같다. 이제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어디가 끝일까. 숙제는 그만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Q. 출산과 육아가 부담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출산과 육아가 과연 축복일까. 우리나라는 자식 농사란 특이한 표현을 쓴다.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는 의미는 단순히 농부가 모종을 심듯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녀를 사회적으로 성공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좋은 학벌을 얻게 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갖도록 지원해야 한다. 부모로서 성공을 가늠하는 사회적 증표로 활용되고 있다. 아이를 위해 매달 몇십만 원에서 몇백만 원을 들이는 게 당연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부모로써 해준 게 없는 게 없단 사회적 평가가 있다. 내 삶을 그렇게 평가받고 싶지 않다”
Q. 본인이 스스로 사회적 평가를 너무 의식하는 게 아닌가
“부인하지 않겠다. 사회적 압박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누구보다 그 기준을 충족하고 싶단 강박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잘못은 아닌 것 같다. 우린 태어날 때부터 타인과 비교 받고 경쟁하며 살아간다. SNS의 발달로 이는 더욱 심화됐다. 나는 나와 아내에게 투자하는 삶에 만족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 여행과 캠핑을 자주 다니고, 최근엔 서울에 아파트도 매입했다. 주변에서 부러워한다. ‘성공했네’라는 말도 들었다. 조용하고 편안한 삶에 만족한다. 입시와 취업, 결혼처럼 다시 경쟁을 시작하고 싶지 않다. 출산과 육아에 자신감도 없고, 노후에 아이로부터 속박받고 싶지도 않다. 부모라는 이름의 책임감이 너무 크다. 또 다른 사회적 평가에 맞추려 스트레스를 받기도 싫다”
Q. 낮은 출산율이 사회문제가 됐는데 부담은 없는가
“출산과 육아는 사생활의 영역이고 사회적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것은 전제주의다. 공동체주의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개인의 희생을 강요할 경우 위험하다. 저출산 문제를 이렇게 접근한다면 무자녀 부부들의 반발을 더 살 것 같다”
Q.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과거엔 아이가 생산재였다. 현재는 사치재로 여겨진다. 저출산이 국가적 문제라면 ‘출산은 리스크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는 사회문화적 인식 변화가 우선적이지 않을까.
“이민정책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란 오래된 오해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자긍심을 높이는 단어로 활용돼 왔지만, 한국인의 배타성을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한국인 이미 다인종 국가가 됐다. 외국인 노동자의 한국 유입 속도는 가속화하고 있다. 다문화가정을 찾는 일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은 이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해외여행을 나가보면 한국만큼 인종차별적인 나라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