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손보, 비전문가가 이사회 리스크관리위원···이번엔 바뀔까
사실상 중앙회가 보낸 지역농협 조합장이 맡아 경쟁사들은 교수, 금융사 임원 등 전문가 선임 보험사, IFRS17 도입···위험관리 더 까다로워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농협손해보험의 이사회 리스크관리위원회에 금융인 출신이 아닌 지역 농협 조합장 출신 인사가 차지하고 있어 논란이다. 최근 보험업계는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으로 위험관리가 더 까다로워진 만큼 기업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종철 농협손보 기타비상무이사는 이사회 리스크관리위원회에 소속돼 있다. 최 이사는 현재 지역 농협(경기 연천 전곡 농협) 조합장이다. 40년 동안 전곡 농협에서 일해왔으며, 보험업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 기타비상무이사는 주요 주주가 기업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최 이사는 사실상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지주 계열사에 파견한 인물인 셈이다. 중앙회는 자회사인 농협금융지주와 손자회사인 금융 계열사(은행, 보험 등)의 기타비상무이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임명된 인물들은 대부분 지역농협 조합장 출신으로 비(非)금융인에 가깝다. 이들은 각 계열사의 최고경영책임자(CEO) 등 임원 인사에 있어 중앙회의 뜻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업계에선 중앙회가 금융계열사의 기타비상무이사 자리에 비전문가를 앉히는 것은 기업 경쟁력을 떨어트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농협손보는 지역 농협 출신의 인물에게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리스크관리위원을 맡겨 문제라는 평가다. 금융사들은 보통 이사회의 위험관리위원 자리엔 금융 전문가들을 선임해 거시경제 및 금융시장의 급격한 변동에 대비한다. 더불어 법률가도 선임해 대규모 소송으로 인한 위험(운영리스크)에도 대처한다.
게다가 농협손보 리스크관리위원회엔 최 이사 이외에도 비전문가가 존재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리스크관리위원인 김두우 사외이사는 언론인 출신으로 금융업 경력이 없다. 나머지 한 명인 강선민 사외이사만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로 금융 전문가다. 이러한 구성으로는 경영진의 판단에 대한 위험 관리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농협손보와 자산 규모가 비슷한 손해보험사들은 리스크관리위원 자리는 경제·재무 전문가들이 맡고 있다. 흥국화재는 경영학 교수 출신인 류충렬·신건철 사외이사가 맡고 있다. 롯데손해보험은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박병원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윤정성 국민대 경영학 교수 등이 역임한다.
농협손보를 제외한 나머지 농협 금융계열사들을 봐도 리스크관리위원회엔 전문가들이 자리잡고 있다. 농협은행은 조직 내에서 리스크관리부문장까지 지냈던 반채운 전 부행장에게 리스크관리위원을 맡겼다. 농협생명은 각각 경영·경제학과 교수인 정재욱·이준행 사외이사와 농협손보 대표 출신인 김학현 기타비상무이사가 맡고 있다.
보험사는 전체 금융사 가운데서 특히 위험관리가 까다로운 곳으로 평가받는다. IFRS17이 도입된 이후 보험부채가 시가평가 되기에 금리 변동에 따라 부채 규모가 큰 폭으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IFRS17에 맞춰 도입된 새 자본건전성 제도인 킥스(K-ICS)는 해지·사업비·장수·대재해리스크 등 새로운 위험항목을 측정한다. 그만큼 자본건전성 관리가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이에 최 이사의 임기가 종료되면 중앙회가 이번엔 전문가를 새로 보낼지 관심이 모인다. 최 이사의 임기는 올해 6월 말까지다. 더구나 최근 금융당국이 이사회의 전문성을 강화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사진 선임 과정을 투명하게 해 전문성을 가진 인물들도 채워 이사회가 경영진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특히 당국은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선임을 둘러싸고 중앙회와 농협금융지주 간의 갈등이 발생하자 농협 전체의 지배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겠다고 밝힌 상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 전체가 최근 이사회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면서 "농협 금융계열사들도 이러한 추세를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