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악화 책임론에···줄줄이 짐 싸는 건설사 수장들

안정에 초점 맞춘 연임 다수였지만 과감한 인적 쇄신으로 변화 시도

2024-04-03     노경은 기자
최근 대표이사 교체로 분위기 쇄신에 나선 주요 건설사의 실적 추이 / 표=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주요 건설사 수장들이 짐을 싸고 있다. 원자잿값 상승, 지방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건설업황이 당분간 침체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돼 건설사 대표이사 인사도 안정에 초점을 둔 연임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실적 악화가 유난히 두드러진 주요 건설사들은 과감한 인적 쇄신을 통해 변화를 꾀하는 모습이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마창민 DL이앤씨 대표이사는 지난달 21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연임 안건 의결에도 불구하고 이후 사표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그 배경으로는 수년째 실적 하락이 계속된데다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가장 많은 사망사고를 낸 건설사라는 오명에 대한 책임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DL이앤씨가 사흘 전인 지난달 31일 마 대표이사를 포함한 임원 18명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한 점 등에 미루어보아 외형은 용퇴이지만 사실상 경질이라는 평가도 있다.

실제 DL이앤씨의 실적 하락은 경쟁사 대비 두드러진다. 2021년 9500억원대이던 영업이익은 2022년 4969억원, 지난해 3306억원 등으로 하락곡선을 그렸다. 실적 악화에 마 대표이사의 연봉 하락폭도 유난히 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마창민 대표이사는 2022년 기본급여 7억5000만원에 성과급 2억9200만원을 더한 10억6300만원을 받았지만, 지난해에는 성과급 전액 삭감으로 7억7300만원의 기본급만 받았다. 연봉이 3억원 가까이 깎인 셈이다. 경쟁사인 삼성물산, GS건설, 대우건설의 대표이사 연봉이 성과급 인상으로 높아진 점과는 대조를 이룬다.

마 대표이사는 이해욱 DL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온 LG전자 출신 인물로 그간 대림산업의 건설사업 부문이 인적분할된 DL이앤씨의 초대 대표직을 3년여 기간 동안 맡아왔다. 하지만 신사업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재임 기간동안 건설사 중 최다 중대재해 발생으로 국정감사에 연이어 소환되기도 했다.

신세계건설도 하루 전인 지난 2일 정두영 대표이사를 경질하고 신임대표에 허병훈 경영전략실 경영총괄 부사장을 내정했다. 신세계건설은 그간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분양 실적 부진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어왔다.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손실만 1878억원에 달하면서 모기업인 이마트의 사상 첫 연간 영업손실의 원인으로 지목됐다고 지난해 말부터 재무구조 불안정은 수없이 거론됐다.

이번 인사는 지난달 초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승진 이후 단행한 첫 쇄신 인사인데다, 정기 인사가 아닌 원포인트 교체 인사 단행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특히 신세계 측의 임원 인사 보도자료에서 경질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한 점은 인적 쇄신과 실적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신임 대표로 내정된 허병훈 경영전략실 경영총괄 부사장은 1988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삼성물산 재무담당, 미주총괄 최고재무책임(CFO) 등을 거친 뒤 2018년 7월 신세계그룹에 입사해 전략실 재무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4번의 연임에 성공한 한성희 전 포스코이앤씨 대표이사도 도시정비사업 누적 수주액을 큰 폭으로 끌어올리며 5연임에 힘이 실리는 듯 했지만 좌절됐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2010억원으로 직전해 대비 35%나 줄어든 모습을 보여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영업이익률또한 2021년 5.4%, 2022년 3.3%, 2023년 2.0% 등으로 하락해 외형성장 대비 내실을 채우지 못했다는 평이다. 신임 전중선 대표이사는 재무에 능통한 만큼 철저히 손익을 따지며 내실 경영에 치중할 가능성이 높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전면에 재무통을 내세운다는 건 사업확장 보다는 재무 건전성 확보에 방점을 둔다는 차원”이라며 “업황 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대표이사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