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 신세’ 신세계건설, 수장 교체에도 잿빛 가득

정두영 대표이사 경질···‘재무통’ 허병훈 신임 대표 내정 부동산 PF 리스크 여전···분양 현장 추가 손실 가능성도

2024-04-03     길해성 기자
신세계그룹 내 ‘재무통’으로 불리는 허병훈 경영전략실 경영총괄 부사장이 신세계건설의 새로운 대표로 내정됐다. / 그래픽=시사저널e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신세계건설이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사장을 교체했지만 정상화로 가는 과정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모회사의 유동성 공급으로 잠시 숨통을 틔운 상태지만 우발채무가 여전하고 미착공사업장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재무적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범삼성가 재무전문가’ 허병훈 신임 대표···재무 개선 기대감↑ 

3일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전날 신세계건설 대표를 전격 교체했다. 기존 정두영 대표를 경질하고 신임 대표로 허병훈 경영전략실 경영총괄 부사장을 내정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취임 이후 그룹 차원에서 단행한 첫 쇄신 인사다. 신세계건설이 2년 연속 적자를 내 그룹 실적 악화의 주범으로 지목되자 인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는 2022년 10월 대표이사직에 오른 후 1년 6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건설 신임 대표로 내정된 허 부사장은 범 삼성가를 두루 거친 인물로 신세계그룹 내 ‘재무통’으로 꼽힌다. 1962년생으로 1988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구조조정본부 경영진단팀과 삼성물산 재무담당, 미주총괄 재무담당임원(CFO) 등을 거쳤다. 2011년 호텔신라로 이동해 경영지원장 겸 CFO 등을 거친 뒤 2018년 신세계그룹에 합류했다. 신세계그룹에선 전략실 기획총괄 부사장보, 지원·관리총괄 부사장, 백화점부문 기획전략본부장, 전략실 재무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허 부사장이 그동안 그룹의 재무 관리를 총괄해온 만큼 신세계건설의 재무 건전성을 회복시킬 적임자로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영업손실 전년 대비 15배 확대···부채 비율 954%, 태영건설 다음으로 높아 

신세계건설은 실적 부진의 늪에 빠져있다. 최근 공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영업손실은 1878억원으로 전년(-120) 대비 15배 이상 불어났다. 같은 기간 당기순손실도 142억2000만원에서 1585억원으로 11배 치솟았다. 진행 사업장의 공사원가 상승과 대구 사업장의 저조한 분양실적 등이 영업적자의 주요 원인이 됐다. 대구의 경우 ‘빌리브 라디체’, 빌리브 스카이, 빌리브 루센트 등 3개 사업장에서 발생한 공사미수금만 1200억원에 달한다.

/ 그래픽=시사저널e

공사미수금을 충당하기 위해 외부에서 자금을 빌려오다 보니 회사의 부채 규모도 급증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회사의 지난해 말 기준 부채 규모는 1조1417억6100만원으로 전년(7519억원)보다 4000억원 가량 늘었다. 부채비율은 2022년 말 265%에서 지난해 953.6%로 뛰었다. 단순 부채비율만 놓고 보면 워크아웃이 진행 중인 태영건설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그룹 지원·자산 매각 통해 유동성 확보 매진

신세계건설은 유동성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올해 들어 자금 마련에 매진해 왔다. 1월 신세계영랑호리즈토와 합병하면서 현금 660억원을 확보했다. 계열사인 신세계아이앤씨와 산업은행을 대상으로 2000억원 규모 사모채를 발행하기도 했다. 1000억원의 회사채가 발행됐고 추가로 1000억원을 더 발행할 계획이다. 이달엔 레저사업부를 조선호텔앤리조트에 1800억원에 매각할 예정이다.

또한 공사대금을 담보로 2000억원을 조달할 예정이다. 신세계건설은 오늘 신한은행 주관으로 2000억원 규모의 담보부대출을 받았다. 담보 대상은 울산 남구 신정동 주상복합(빌리브 리버런트) 신축공사, 강원도 고성권 생활형숙박시설(윈덤강원고성) 신축공사 등을 수행하면서 받을 공사비다. 시행사에서 공사비를 받으면 해당 자금이 대출 상환용으로 우선 사용된다. 이번 대출에 담보로 제공한 울산 빌리브 리버런트와 윈덤강원고성은 분양률이 각각 74%와 64%다. 신세계건설의 주요 사업장 중에서도 분양률이 높은 편이다.

◇우발채무 리스크 여전···‘책임준공’ 구포항역 개발사업 변수

잇따른 자금 확보에도 불구하고 신세계건설에 대한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 리스크가 여전해서다. PF 보증금액은 약 2800억원(이자지급보증 포함 시 3340억원)에 달한다. 주요 PF 우발채무 현황을 보면 ▲구포항역 개발사업(2000억원) ▲연신내 복합개발사업(300억원) ▲구리갈매 지식산업센터 개발사업(420억원) 등이다.

구포항역 개발사업 조감도 / 자료=신세계건설

규모가 가장 큰 구포항역 개발사업은 과거 포항역 부지에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신세계건설이 사업시행자 지분 40%를 직접 보유하고 있다. 이곳은 ‘책임준공 계약’을 맺은 곳으로 무조건 완공부터 해야 한다. 현재 당초 계획 대비 본PF 전환과 착공이 지연된 브릿지 상태다. 현재 포항 주택경기가 얼어붙은 상황이라 해당 프로젝트의 사업성과 본PF 전환 여부, 분양 리스크 통제 수준 등이 재무안정성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추가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현재 주요 사업장인 대구 분양률은 20~30%대 정도에 불과하다. 부산 명지지구 아파텔과 연신내 복합개발 등의 사업장도 분양률이 50% 내외다. 공사비 폭증으로 안 그래도 수익성이 나빠졌는데 미분양으로 충분한 공사비 회수가 이뤄질지 불확실한 실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세계건설이 수주한 민간사업장 중 다수가 2022년에 몰려있는데 대부분 2025년 준공을 할 것으로 예상돼 적자와 PF 부담이 커질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이어 또다시 신용등급 강등 ···“추가 손실 가능성···수익성 개선 어려워”

이런 가운데 신용평가사들은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신세계건설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달 정기평가를 통해 신세계건설 신용등급과 전망을 ‘A·부정적’에서 한 단계 낮은 ‘A-·안정적’으로 변경했다. 지난해 11월 신세계건설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한 지 4개월여 만이다.

이승민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애널리스트는 “계열 차원의 지원 방안이 구체화됨에 따라 일정 수준의 사업과 재무적 대응력은 유지될 것으로 판단된다”며 “진행 사업장의 공사원가가 상승하고 대구 지역 사업장 분양실적이 저조한데 주택경기 침체가 지속되며 진행 현장에서 추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원가율이 높은 민간 도급공사 위주의 사업장 구성, 미분양 사업장과 관련한 영업자산의 추가적 손실 가능성을 고려하면 수익성 개선에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그룹의 핵심 재무통인 허 부사장을 신임 건설 대표로 내정한 것은 그룹 차원에서 건설의 재무 이슈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며 “잠재적 리스크에 대한 선제적 대응과 지속적인 추가 유동성 확보 등을 통해 부채비율을 낮춰 재무 안정성을 한층 개선하는 한편 장기적 사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는데 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