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대책-27] 30대 워킹맘 “한국에서 둘째 낳기 어려운 이유”

“경력단절 우려에 출산 기피···여성에게 기대하는 사회적 차별 여전” “어린이집 하원하는 오후 4시부터 정책적 지원 필요해”

2024-04-12     주재한 기자
/ 그래픽=김은실 디자니어.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대한민국이 위기를 맞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 출산율은 0.66명까지 감소했다. 이대로 가면 2750년에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세계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다시 우렁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100명의 입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되살릴 방법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회사로 퇴근했다가 집으로 출근한다는 말이 있다. 육아 출근이라고도 한다. 아이 돌봄에서 여성의 부담은 크고, ‘남성은 바깥일 여성은 집안일‘이라는 전통적 성 역할에 대한 인식도 여전하다. 나는 이런 사이클 속에서 너무 많이 울었다.”

30대 워킹맘 한아무개씨는 14년차 직장인으로 초등학생 외아들을 키우고 있다. / 사진 = 본인 제공

 

30대 워킹맘(일하는 엄마) 한아무개씨는 둘째를 갖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이같이 답했다. 가사노동과 돌봄 수행에서 여성에게 기대하는 사회적 성별 격차가 여전히 존재하며, 경력단절 우려와 함께 출산 기피가 늘어나고 있다는 게 한씨의 진단이다.

14년 차 직장인이자 초등학생 외아들을 키우고 있는 한씨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현대 여성의 출산육아 걱정과 해결책을 들어봤다.

Q. 여성의 경력단절은 저출산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4년제 대학 진학률이 60%를 넘긴 지 오래다. 남녀 모두 고학력인 시대다. 대학 시절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인다. 여성의 사회경제활동 참여와 인정 욕구가 남성보다 낮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출산에 따른 아이 돌봄 역할은 여전히 엄마(여성)에게 기대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여성은 출산과 경력 유지에서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선택을 강요받는다. 여성의 42%가 경력단절을 겪는다는 통계를 봤다. 일을 그만두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일터를 떠났다가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하기도 어렵다. 재취업 기간이 평균 8~9년이 된다고 한다.”

Q. 돌봄 수행에서 여성에게 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고 했는데, 구제적으로 설명해 준다면

“나는 15개월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직장 복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저 엄마는 모성애가 없나. 어떻게 핏덩이 같은 아이를 떼어놓고 출근을 하나. 자기 좋자고 엄마가 너무했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반대로 ‘부성애가 없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은 없다. 아이가 커서 유치원이나 학교를 보내더라도 보호자 명단 최우선순위에는 기본적으로 엄마의 번호를 적는다. 학부모 상담에서도 마찬가지다. 육아는 여성의 역할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여전하다는 이야기다.”

유모차도 엄마가 아이를 끄는 차라는 의미에서 논란이 되기도 한다.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놓고 따지자는 말이 아니다. 남성보다 여성에게 출산이나 출생이나 양육의 부담을 더 지우는 사회적 분위기를 말하고 싶다.”

Q. 복직이 빨랐는데, 직장 내에서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회사에 피해를 준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내가 없는 15개월 간 누군가 나의 일을 대신했거나 분담해 담당해온 것이다. 그런데 회사의 입장에서 복귀한 나에게 다시 롤을 부여해야 한다. 인사철과 육아휴직 복귀 시점이 달라 적당한 업무 부여가 어려웠고, 다른 직원과 중복된 업무를 해야 했다. 회사가 시스템을 미리 정비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8년 전의 일이다. 우리 회사 뿐만 아니라 국내 대부분 회사는 임시로 업무분장을 할 것이다. 국내 육아휴직 사용률은 최근에 겨우 30%를 넘긴 것으로 알고 있다.”

Q. 복직 후 적응은 어땠나

“개인적으로도 힘들었다. 사회와 단절된 15개월의 공백을 채우고 다시 업무 감각을 찾는 데 반년 이상 걸린 것 같다. 나의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시간을 놓친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복귀 후 3년 뒤에 둘째가 생겼다. 감사한 일이었지만 기쁘기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낳아야 하나, 내가 이 아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특히 회사에는 또 어떻게 얘기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아이를 낳지 못하게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육아휴직을 장려하거나 환영하는 분위기도 아니었으니까. 4년제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커리어로 회사에 입사해서 아쉬운 소리를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외에도 여러 복잡한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 둘째와 안타까운 이별을 했다.

내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출산으로 몸이 망가지는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체형과 체질이 달라진다. 살이 금방 붙고, 근력과 근육량은 줄어든다. 다시 회복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를 낳으면 또 몸이 무너질까,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누군가는 속물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내 몸이 굉장히 소중하고 중요하다.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Q. 첫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많을 것 같다

“검지손가락을 펼치며 ‘엄마 한 번만 해줘’ ‘한 번만 놀자’는 아이를 떨쳐내고 출근할 때 너무 눈물이 났다. 하지만 9시까지 출근하려면 어쩔 수 있나. 토끼 같은 아이를 씻고 먹이고 입혀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낸다. 너무 정신이 없다 보니 어른들끼리는 ‘입소’가 아니라 자동차를 주차장에 넣는 것처럼 ‘입고’시켰다고도 한다. 퇴근 후 잘 놀아주지 못한 점도 미안하다. 일에 지쳐 집으로 복귀하면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한다. ‘평일에는 그냥 시간을 흘려보낸다’는 말이 맞는다. 주말에야 겨우 가까운 놀이터나 놀이공원에 데리고 나간다. 맞벌이 부부 중에는 그마저도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아이를 돌보려면 나의 커리어를 포기하든지, 남편에게 커리어를 포기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둘 다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Q. 사회적 분위기 개선 외에 정부의 어떤 구체적 지원이 출산에 도움이 될까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보육 지원이 된다면 둘째를 낳을 수 있다고 본다. 오후 4시는 어린이집이 끝나는 시간이고, 오후 8시는 내 근무가 끝나고 퇴근해서 정리가 마무리되는 시간이다. 통상 어린이집은 오후 4시에 하원을 한다. 종일반 아이들은 오후 7시까지 보육을 해주지만 그 숫자가 많지는 않다. 결국 조부모나 친인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공백을 정책적으로 메웠으면 좋겠다. 근로시간 단축이나 유연제 도입 등이 현실적 방안이 될 것 같다. 현재 초등학교에서 진행 중인 ‘늘봄학교’ 서비스는 빈틈투성이다. 아이들을 교실에 어두운 시간까지 방치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