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 피로 전 세계 살린다"···헌혈 대체 '인공혈액' 개발 나선 업계

119개국 혈액 부족 현상···헌혈 대체할 '인공혈액' 개발 관심 한국, 저출산·고령화로 헌혈자 감소···중장기 대책 필요성 커 줄기세포부터 면역원성 제거 유전자교정동물 활용 연구진행

2024-02-26     김지원 기자

[시사저널e=김지원 기자] 국내 바이오 업계가 인공혈액 개발에 나섰다. 혈액 부족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중장기적 대책 마련 필요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안정적인 수혈을 가능케할 인공혈액 개발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줄기세포와 유전자교정 동물을 활용한 인공혈액 연구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국내 바이오 업계는 줄기세포의 분화능을 이용한 인공혈액 개발부터 유전자교정으로 면역을 제어한 동물의 혈액을 이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혈액 부족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 워싱턴대에 따르면 전 세계 196개국 중 119개국이 혈액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헌혈이 없어도 안정적인 수혈이 가능케 하는 인공혈액 연구 개발이 진행돼왔다.

인공혈액의 필요성 확대에 따라 관련 시장도 커질 전망이다. 해외 시장조사기업 글로벌인포메이션(Global information)에 따르면 전 세계 인공혈액 시장규모는 2022년 62억달러(8조9200억원)에서 해마다 20.5%씩 성장해 오는 2027년에는 156억달러(22조4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헌혈자 수 감소에 따라 중장기적 대책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5일까지 올해 누적 헌혈자 수는 총 38만2552명이다. 이중 16~29세 올해 누적 헌혈자 수는 19만5115명으로, 전체의 51%를 차지한다. 헌혈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10·20대 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혈액 부족 문제가 확대되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국내 바이오 업계도 인공혈액 개발에 나섰다.

입셀은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이용한 인공혈액 연구 개발을 진행 중이다. 혈액은 고형 성분으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혈장으로 구성된다. 각각의 성분은 신체 내에서 산소 운반, 신체 방어·지혈 등의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입셀은 iPSC를 이용한 세포 분화 기술력으로 인공적혈구 제제를 대량생산하는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인공혈액 대량 생산을 통해 혈액 수급과 부작용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표다.

특히 iPSC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무한정 공급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입셀은 신체 내 혈액을 뽑아 줄기세포로 역분화하는 과정을 거친후, 해당 역분화 줄기세포를 적혈구나 연골세포로 분화해 만든다. 원하는 세포로 분화할 수 있도록 줄기세포의 환경을 조성해 분화한 적혈구 세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특히 대량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입셀 관계자는 "'한 사람 피로 전 세계를 살린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라고 말했다. 

입셀은 혈액제제를 만드는 데 필요한 Rh-O형 혈액을 확보했다. 한마음혈액원과 ‘만능공여 인공혈액’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협약을 통해 다른 혈액형과 달리 면역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Rh-O형의 적혈구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수혈을 위해서는 혈액형이 일치해야 하지만, Rh-O형은 모든 혈액형에 공여가능하기 때문이다. Rh-O형의 혈액으로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면역 반응이 없어 모두에게 수혈 가능한 혈액제제를 선보이겠다는 목표다.

현재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미국식품의약국(FDA), 유럽의약품청(EMA) 가이드라인에 맞춰 Rh-O형 유래 적혈구 분화용 유도만능줄기세포 은행을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입셀은 은행 구축을 통해 분화 효율이 좋은 2개 이상의 세포주를 확보할 계획이다. 입셀 관계자는 ”올해 내로 구축이 완료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다만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5년 이상 필요할 것으로 봤다. 입셀은 지난해 10월 제2차 세포기반 인공혈액 제조 및 실증 플랫폼 기술개발사업의 ‘인체 세포기반 인공혈액(적혈구) 생산기술 확보’ 신규 과제에 선정되며 5년간 약 45억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원받을 예정인데, 상용화까지는 5년보다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자료=각사, 표=정승아 디자이너

 

듀셀바이오테라퓨틱스(이하 듀셀바이오)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인공혈소판을 개발하고 있다. 혈액은 산소운반, 혈액 응고 등의 역할을 한다. 이때 혈액 응고 역할을 하는 게 혈소판이다. 혈소판은 혈관 내 지혈, 상처를 통한 세균 침입 방지 등의 기능이 있다. 또 혈관 내 종양 성장 및 혈관 외 유출의 조절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듀셀바이오는 응급수혈 환자를 위한 인공혈소판 파이프라인 ‘DCB-101’을 개발 중이다. 전임상 단계로 오는 2025년 3분기 내 임상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이외 혈소판 감소증 치료를 위한 파이프라인 DCB-102·DCB-104·DCB-105 등도 있다. 혈소판 감소증은 혈액 1㎣당 혈소판 수치가 10만 개 이하인 상태로, 정상적인 혈소판 수치보다 낮은 상태를 의미한다. 수술이나 항암치료 이후 등에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유전자교정 기술을 이용해 동물의 피를 인공혈액으로 만드는 연구 개발도 진행 중이다. 동물 혈액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기술이 등장한다면 수혈액 대량생산이 가능할 전망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면역 제어가 먼저 필요하다. 이에 국내에서도 유전자교정 기술로 면역을 제어하고자 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툴젠은 라트바이오와 함께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절단해 유전체 교정을 가능하게 하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Cas9) 기술을 활용해 ‘유전자교정 소’를 개발했다. 인간의 항체가 반응하는 주요 항원을 유전자 가위로 제거한 소로, 인공혈액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6월 인공혈액용 유전자제조 소 개발에 성공한 이후, 라트바이오 주도로 관련 후속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엠젠솔루션은 인간 유사 혈액 생산용 돼지를 개발하고 있다. 면역 거부반응이 없는 인간 유사 혈액 생산용 돼지를 개발을 통해 수혈가능한 인공 혈액의 대량 추출이 가능케 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정부도 인공혈액 생산 연구개발 지원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2022년 3월 혈액 부족 문제에 대응해 인공혈액 제조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인공혈액 생산을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 등과 협력하는 연구개발 사업으로, 총 15년 3단계 프로젝트로 진행될 계획이다. 저출산·고령화로 헌혈량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기존 혈액 공급체계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목표다.

다만 인공혈액 상업화에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특히 줄기세포를 활용한 인공혈액 개발에는 ‘탈핵화’와 ‘대량공정’이라는 과제가 남아있다. 역분화 줄기세포로 분화시킨 적혈구를 임상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인공 적혈구와 혈액 속 적혈구 간 구조 일치를 위한 탈핵화 기술이 필요하다. 적혈구에는 핵이 없기에, 구조 일치를 위해서는 세포에 있는 핵을 제거하는 기술이 선행돼야하는 것이다.

대량화 연구도 필요하다. 헌혈을 대체할 수 있으려면 대량생산이 가능 해야한다. 피 1㎖에는 적혈구가 50억 개 정도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고효율의 세포 분화·증식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산소운반 뿐 아니라 혈액 응고라는 혈소판의 역할도 가능해야한다는 점에서 인공혈액 개발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아직 이 두가지 기능을 모두 하는 인공혈액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