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신약 개발을 어렵게 만드는 것들

성과 아닌 가능성·잠재력 집중하는 분야 가능성과 기대 악용부터 '한탕' 인식까지

2024-02-22     김지원 기자

[시사저널e=김지원 기자] “신약 개발은 한국인의 DNA에는 맞지 않는 영역이란 말도 많죠.”

제약·바이오 업계를 취재하며 자주 듣는 종류의 말이 있다. ‘사짜가 많다’, ‘어디가 오를 것 같냐’. 다 다른 말인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엔 모두 신약 개발의 어려움과 관련돼 있다.

신약 개발에는 평균 15년이 소요된다. 1만여개의 후보물질이 있다면 단 1개만이 성공한다. 사정은 전 세계 어디나 비슷하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이 지난해 11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평균 신약 개발기간은 15년, 개발비용은 2~3조원이다.

신약 개발이 어렵기는 어디나 매한가지인데도, 왜 국내만 그 원인으로 ‘DNA 탓’까지 등장하는 걸까. 연구 개발(R&D) 규모가 크지 않아서, 인력이 없어서, 2조원이라는 어마무시한 비용을 마련할 수 없어서.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DNA 탓이 나온 데 대해서는,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

신약 개발은 장기전이다. 하지만 국내 시장은 즉각적인 반응이 나온다. 상황에 따라 급변한다. 빈대가 퍼지면, 관련 약을 보유한 기업이 급등한다. 엠폭스가 유행이라는 말이 나오면 관련 백신을 개발 중이라는 기업에 눈길이 쏠린다. 그리고 A 기업의 주가 급등 소식을 알리는 헤드라인이 도배된다. 이후 어느 순간 그 관심은 매우 빠른 속도로 사그라든다.

제약·바이오 분야를 취재하고 있다고 하면 지인들이 종종 이렇게 묻는다. “그래서 어느 기업을 사야해? 어디가 올라?” 제약·바이오 종목은 '언제든 급등한다' 인식이 공공연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마치 신약 개발을 끝낸 것처럼 성과를 부풀리고, 실패한 임상을 두고 애써 의미를 찾아내 부여하는 자들의 책임도 크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당장의 성과보다는 가능성과 미래가치를 두고 투자하는 영역인데, 이같은 기대와 가능성을 악용하는 이들이 있어서다.

“거의 다 된 것처럼 말하는 나쁜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한 관계자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로 ‘나쁜 사람’을 꼽았다. 이들의 부풀리기와 과장으로, 물이 흐려지고, 개인 주주를 포함한 투자자의 신뢰를 잃고, ‘사’짜가 많다는 말로 이어진다. 업계 전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면, 정말 필요한 투자와 지원 감소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신약개발은 원래 어렵다. 원래도 어려운 영역에 이런 종류의 어려움까지 더해지지는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