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유럽서 ‘손님’ 마케팅 박차···렉서스 전철 밟나
고객 환대 철학 강조···렉서스 ‘오모테나시’와 유사 렉서스, 30여년째 더딘 성장···“중장기 공략해야”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한국말 ‘손님’은 고객을 게스트(guest)처럼 대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네시스를 고르고, 구매하고, 보유하는 것이 고객들에게 기쁨이 되길 바랍니다.”
제네시스 유럽 법인이 공식 홈페이지 첫 화면에 게재한 문구다. 고객을 ‘모신다’는 서비스 철학을 함축한 내용으로, 일본 고급차 렉서스의 서비스 철학 ‘최고의 환대(오모테나시, おもてなし)’와 같은 맥락의 마케팅 슬로건으로 읽힌다.
제네시스가 미국에 버금갈 만큼 중요한 고급차 시장인 유럽에서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앞서 시장에 진출한 브랜드의 적응 전략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제네시스는 유럽에서 다양한 마케팅 활동으로 브랜드 존재감 강화에 힘쓰는 중이다.
손님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고객 서비스를 차별화하는데 공들이고 있다. 5년, 주행거리 무제한 조건의 무상 보증기간을 고객에게 부여해 기계적 수리, 결함 부품 교체, 페인트·녹 손상 수리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렉서스(5년/10만㎞), 메르세데스-벤츠(3년/주행거리 무제한) 등 현지 주요 브랜드에 비해 강화한 수준이다.
이에 더해 제네시스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실차에 탑재한 안면인식 기능을 비롯해 전기차 충전·자동결제, 디지털키 2 등 신기술을 적극 홍보하며 기술력을 과시했다. 또한 유럽의 주요 골프대회인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을 공식 후원하는 방식으로 스포츠 마케팅을 펼쳐 고급 감성 전달, 브랜드 인지도 강화에 힘쓰고 있다.
◇렉서스, 소형차·하이브리드차로 차별화 “소기의 성과”
제네시스의 이 같은 유럽 마케팅은 앞서 30여년 전 먼저 현지에 진출한 렉서스의 행보와 닮았다. 일본 완성차 업체 토요타는 지난 1989년 고급차 시장 공략을 위해 렉서스를 출범시킨 후 이듬해에 대형 세단 LS 400을 앞세워 유럽에 본격 진출했다.
이후 출시한 NX, RX, UX 등 준중형, 소형급 차종이 최근 렉서스의 유럽 실적 성장세를 견인 중이다. 렉서스는 영국 자동차 전문지 왓카(What car)로부터 지난해 7년 연속 ‘최고의 신뢰성 시상식’ 1위를 차지하는 등 입지를 다졌다.
또한 렉서스는 벤츠, BMW 등 현지 유력 브랜드의 전철을 밟는 대신 브랜드 고유의 강점을 무기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오모테나시 철학을 바탕으로 전시장에 어린이 놀이공간, 비즈니스 회의실 등 시설을 설치하는 등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공략했다.
이 뿐 아니라 연료 효율, 배출 저감에 대한 시장 요구사항에 맞춰 ‘전공 분야’인 하이브리드차를 공격적으로 도입했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확산 추세에 대응해 하이브리드 모델인 RX 300을 출시해 입지를 강화해왔다. 이밖에 기존 차량의 고성능 버전 F 시리즈를 후속 도입해 강한 주행성능을 원하는 소비자 니즈도 충족시켰다.
◇제네시스, 유럽 공략 10년도 채 안돼
제네시스가 렉서스의 일부 마케팅 활동을 사업에 응용하고 있지만 제한적인 부분도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유럽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소형차, 하이브리드차 제품군이 없는 점이 유럽 공략에 발목 잡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제네시스는 앞서 입지를 넓혀온 한국, 미국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중형·대형차 위주로 라인업을 구성했기 때문에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렉서스에 비해 공략 기간이 짧은 점도 단기간 극복하기 어려운 요소다. 제네시스가 앞서 2015년 설립 직후 유럽에 대형 세단 ‘EQ900(G90의 전신)’을 출시하며 사실상 진출했지만 2017년 부진을 면치 못해 판매 중단한 기간까지 포함해도 10년이 채 안된다. 당시 제네시스가 유럽 판매를 중단한 사실은 마쓰다 유노스, 닛산 인피니티 등 유럽에서 쓴 맛을 본 아시아 고급차 브랜드와 함께 ‘뼈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네시스의 유럽 판매량도 미미하다. 오토모티브 뉴스 유럽 등 외신에 따르면 제네시스는 지난 2021년 5월 유럽 진출 선언 후 지난 2022년까지 1년 여 기간 완성차 3300여대 판매하는게 그쳤다. 지난해 실적은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에 별도 집계되지 않을 만큼 저조한 실정이다. 같은 기간 렉서스 5만8000여대, 벤츠 104만여대, BMW 103만여대씩 판매한 것과 대조된다.
◇30여년 공들인 렉서스도 점유율 0%대···“장기 공략해야”
제네시스가 현지 브랜드의 오랜 역사에 비하면 유럽에서 이제 ‘첫 술’을 뜬 셈이기 때문에 배부를 수 없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비교 대상인 렉서스도 유럽 진출 이듬해인 1991년 영국에서만 671대를 판매했다.
올해 34년째 유럽을 공략하고 있지만 지난해 시장 점유율 0.4%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이는 아시아 브랜드 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이지만 “유럽 브랜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네시스가 유럽에 안착하고 입지를 다지기 위해 장기적 관점을 갖고 꾸준히 공략해 나가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영국 자동차 매체 오토카(AUTOCAR)는 “유럽에 고급 브랜드를 소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제네시스에게 (유럽 공략에 대한) 최선의 시나리오 사례로 렉서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네시스의 차별화 전략은 내년부터 유럽, 한국 등 주요 시장에서 순수전기차(BEV) 등 무공해차만 신차로 판매하기 시작해 2035년 100% 전동화 브랜드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완성차 시장의 전기차 시대가 더디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가운데, 제네시스가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시장 입지를 다져나갈 계획이다.
이밖에 루크 동커볼케 사장, 송민규 부사장, 로렌스 해밀턴 총괄 등 업계 내 잔뼈 굵은 인재들로 유럽법인 경영진을 꾸려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마케팅 역량 강화를 위해 유럽의 전설적인 전직 레이서 재키 익스(Jacky Ickx)를 브랜드 파트너로 발탁하기도 했다.
제네시스 관계자는 “고객이 마치 우리 집에서 귀한 손님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 제네시스 철학”이라며 “올해 브랜드의 고급감을 더욱 활성화시키는 동시에 한국 특유의 환대 문화를 통해 고객경험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