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속 베테랑 내친 SK그룹 파격 인사, 묘수될 수 있을까

SK그룹, 2024년 임원 인사 단행 ‘백전노장’ 조대식·장동현·김 준·박정호 부회장단 4인 퇴진 주요 계열사 ‘젊은 피’ 교체

2023-12-07     정용석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인근에서 열린 ‘2023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에서 개막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SK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SK그룹이 지난 7년 동안 그룹을 이끌어온 부회장 4인방을 모두 교체하는 파격적인 물갈이 인사에 나섰다. 50대 중심의 부회장 라인을 구축해 SK를 둘러싼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최태원 SK 회장의 의중이 담긴 인사로 풀이된다.

7일 SK그룹은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63)과 장동현 SK㈜ 부회장(60),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62),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60)에 대한 직무를 해제하는 임원 인사 내용을 발표했다. 지난 2016년 말 인사에서 주력 사장단을 50대로 전면 교체한 지 7년 만에 대대적 세대교체를 단행한 것이다.

부회장 4인방은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거나 자리를 옮긴다. 이들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조력자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조 의장은 SK㈜ 부회장으로, 장 부회장은 SK㈜ 부회장직을 유지하지만 직무는 내려놓는다. 장 부회장은 이번 인사로 박경일 사장과 함께 SK에코플랜트 각자 대표(부회장)를 맡는다. 

김 부회장도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직을 내놓고 부회장직만 유지한다. 박 부회장은 SK㈜ 부회장과 SK하이닉스 부회장을 맡는다. 박 부회장 퇴진으로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단독 대표이사가 됐다.

좌천성 인사 대상에 ‘부회장 4인방’이 오른 건 예견됐던 측면이 있다. 정식 인사 발표가 나기 일주일 전부터 SK그룹 인사 내용이 거론됐고, SK측이 부인하지 않으면서 부회장 4인방의 용퇴는 기정사실화됐다. 

앞서 최 회장이 지난 10월 ‘서든데스(돌연사)’를 경고하고 나서면서 SK그룹 내에서도 인사에 대대적 변화가 있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4일 최 회장은 미국 워싱턴 D.C 인근에서 열린 ‘2023 트랜스퍼시픽 다이얼로그(TPD)’ 기조연설 후 기자들과 만나 “새로운 경영진, 젊은 경영자에게 기회를 줘야 하는 때가 당연한 것”이라며 부회장 4인방에 대한 물갈이 인사를 시사하기도 했다.

대신 새롭게 등판한 젊은 리더들이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직을 맡는다. 각 관계사는 SK㈜ 사장에 장용호 SK실트론 사장, SK이노베이션 사장에 박상규 SK엔무브 사장, SK실트론 사장에 이용욱 SK㈜ 머티리얼즈 사장, SK에너지 사장에 오종훈 SK에너지 P&M CIC 대표, SK온 사장에 이석희 전 SK하이닉스 사장을 각각 선임했다. 또한 SK㈜ 머티리얼즈 사장에 김양택 SK㈜ 첨단소재투자센터장이, SK엔무브 사장에 김원기 SK엔무브 그린성장본부장이 각각 보임됐다.

(왼쪽부터)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장동현 SK㈜ 부회장. /사진=SK

이번 인사는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향후 10년을 이끌 새 인물 발탁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이 처음 ‘서든데스’를 언급한 지난 2016년 발탁된 구원투수들이 물러나고 젊은 리더들이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대대적인 변화보다는 안정에 무게가 실렸던 삼성그룹의 임원 인사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SK그룹은 지난해 인사에서 핵심 계열사 경영진을 기존대로 유지하며 ‘위기 속 안정’ 기조를 보였다. 

하지만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백전노장보다는 젊은 리더십이 전면에 배치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SK그룹이 경영진을 대거 물갈이한 데는 그룹의 경영상황이 여느 때보다 위기에 놓여있다는 분석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패러다임에선 기업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오래된 경험을 축적한 리더를 필요로 했다”면서 “다만 아날로그 시대에 축적한 경험이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디지털 전환기, 4차산업 혁명기를 맞아 기업들은 미래 먹거리를 찾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 때”라며 “신사업 쪽에 힘을 싣기 위해선 젊은 사장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왼쪽부터)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최윤정 SK바이오팜 신임 사업개발본부장. /사진=SK

이번 SK그룹 인사의 또 다른 특징은 가족경영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최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은 그룹 2인자 격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임명됐다. 임기는 2년이다. 최 부회장은 2007년 SK케미칼 대표이사 취임에 이어 2017년 중간 지주회사인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를 맡아 SK의 케미칼, 바이오 사업을 이끌고 있다. 대내외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4인 부회장의 퇴진으로 생긴 공백을 메울 가장 믿을 만한 최측근으로 최 부회장을 선택한 것이다. 

이에 최 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이냐에 대한 재계의 관심도 커졌다. 친척을 핵심 인물로 앉혀 최 회장 자녀가 경영권을 물려받을 시점까지 경영권 분쟁 우려가 없도록 조치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최 회장의 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투자팀장은 이번 인사에서 입사 6년만에 사업개발본부장으로 승진하며 그룹 내 최연소 임원 자리를 꿰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