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 걷는 건설업계···“내년엔 더 춥다”

올해 건설사 14곳 부도···미분양에 자금줄 막혀 악성 재고 1만건 넘어···90% 이상 지방 “선행지표 빠르게 악화···유례 없는 상황” 브릿지론 만기 2024년에 몰려···줄도산 우려 커져

2023-12-06     길해성 기자
/ 그래픽=시사저널e DB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건설업계에 먹구름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미분양과 고금리, 공사비 상승,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경색 등 악재가 겹쳐 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부동산 전망 지표들도 모두 최악을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건설경기 반등이 없다면 PF 만기가 돌아오는 내년 하반기부터 건설사 줄도산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사비 회수 어려워”···부도처리 건설사 속출 

4일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현재까지 전국에서 종합공사업체 512곳이 폐업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6년 530건 이후 최대다. 지역별로 경기가 111곳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이 100곳으로 그 뒤를 이었다. 폐업한 전국 종합건설업체 수가 2021년 305곳, 지난해 362곳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급증한 수치다. 올해 마감이 아직 한 달 가량 남은 점을 고려하면 폐업 건설사 수는 더 많아질 전망이다.

부도처리(금융결제원 당좌거래 정지업체)가 난 건설사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시공능력평가 285위이자 경남지역 8위인 남명건설이 부도처리 됐다. 남명건설은 지난달 만기가 돌아온 12억4000만원 가량의 어음을 막지 못했다. 금리가 상승해 이자 부담이 커진 가운데 주택 미분양 등 여파로 공사비 회수가 늦어진 영향이다. 남명건설의 공사 미수금 누적액은 600억원 가량이다. 남명건설이 시공한 서울 성동구 용답동 장한평역 퀀텀뷰 오피스텔은 2021년 분양을 시작했으나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분양 물량을 모두 떨어내지 못하고 있다. 올해 남명건설을 포함해 건설사 14곳이 문을 닫았다.

업계에선 지난해부터 계속된 부동산 경기침체로 중소 건설사의 부도나 법정관리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100위 내외의 기업들도 있었다. 올해에만 범현대가기업인 에치엔아이엔씨(133위)와 대창기업(109위)·신일건설(113위) 등이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지난해엔 대우조선해양건설(83위)·우석건설(202위)·동원산업건설(388위) 등이 부도를 맞았다.

건설사의 부도로 현장에선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경기 파주에서는 연립주택 사업지가 준공(공정률 96.63%)을 앞두고 시공사 부도로 좌초됐다. 울산의 한 공동주택 사업장(공정률 30%)은 시공사 부도 이후 사업이 수개월째 제자리걸음이다. PF 대출이 어려워 시공사가 참여를 거부하고 있어서다. 조합원이 추가 분담금을 모아 시공사를 다시 찾고 있다.

◇악성 미분양 1만건 돌파···지방 건설사 ‘비명’

건설업계에선 미분양과 고금리, 공사비 상승, PF 시장 경색 등 악재가 겹쳐 출구가 없단 반응이다. 특히 지방 미분양과 낮은 입주율은 업계의 자금 순환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꼽힌다. 국토교통부의 주택 통계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 5만8299가구 중 지방이 5만972가구를 차지한다.

/ 자료=국토교통부

가장 큰 문제는 악성 미분양(준공 후 분양이 안 된 가구) 물량이다. 국토부 주택통계에 따르면 준공 후 미분양은 10월 기준 1만224가구로 전월(9513가구)보다 7.5% 증가했다. 준공 후 미분양이 1만가구를 넘어선 것은 2021년 2월(1만779가구) 이후 2년 8개월 만이다. 악성 미분양 물량은 지방에 몰려 있어 지방 소형 업체들이 더 크게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건설 자재 가격이 크게 올라 많은 대출을 받았지만 집은 팔리지 않아 악성 미분양으로 전락해 자금 경색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며 “팔릴 때까지 할인분양을 하면 원금을 갚지 못해 도산하고 그대로 가자니 고금리에 버티다 쓰러질 위기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부가 PF 대출 지원을 늘린다고 하지만 선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데다 지방 중소 건설사는 기존 부채 원리금 만기만 연장하고 있는 실정이다”고 덧붙였다.

◇주택사업 경기·분양 전망 지수 일제히 하락세

부동산 시장을 전망하는 지표들도 최악을 치닫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주택사업경기 전망지수는 전월대비 18.9p 포인트 하락한 68.8를 기록했다. 이 지수가 60대로 하락한 건 올해 2월 이후 처음이다. 지수는 공급자 입장(주택업계)에서 주택사업 경기를 판단하는 지표로 100을 기준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긍정적 전망이 많고, 낮을수록 부정적 전망이 많다는 의미다.

/ 자료=주택산업연구원

지역별로 살펴보면 서울이 전국에서 낙폭이 가장 컸다. 10월 115.0에서 11월 86.3으로 전월 대비 28.7 하락했다. 같은 기간 경기는 16.2p(97.2→81), 인천은 13.2p(96.5→83.3) 내렸다. 비수도권은 전달 84.5에서 이달 65.6으로 하락했다. 주산연 관계자는 “서울은 유독 큰 폭으로 하락하는 등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던 수도권 경기전망이 부정적으로 급변하고 있다”며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 상단이 7%를 넘어서는 등 고금리 장기화 전망과 가계대출 급증에 따른 대출 제한 등으로 주택 경기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국 아파트 분양 전망지수도 4개월 연속 하락세다. 12월 전국 아파트 분양 전망지수는 61.5로 전월 대비 8.9포인트 하락했다. 해당 지수는 지난 8월 100.8에서 9월 90.2 밑으로 떨어진 뒤 넉 달째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분양 전망지수가 100을 넘으면 분양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업자가 더 많고 100 미만이면 그 반대를 의미한다. 고금리와 건설원가 상승에 따른 분양가 상승에 이어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까지 가세하면서 건설사와 수분양자 모두 소극적 자세로 돌아선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 하반기부터 건설사 줄도산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선 건설경기가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박선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선행지표가 이렇게 많이 감소한 것은 유례가 없는 상황이다”며 “향후 2~3년간 건설경기 둔화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이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PF다”며 “본 PF로 넘어가기 이전 단계에서 높은 이자로 조성한 브릿지론의 만기가 2024년에 많이 몰려 있다는 점이 시장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