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홍콩 ELS 대규모 손실 우려에도 안도하는 이유는

홍콩H지수 급락으로 관련 ELS 상품 대규모 손실 우려 불완전판매 여부 쟁점 부상···총 손실액, 시중은행별 판매 규모 비례 우리은행, 2019년부터 판매 규모 축소···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와 지수 불확실성 고려 리스크 부서 역할 주효···판매 및 사후관리 등 투자자 중심 프로세스 개선

2023-11-29     김태영 기자
5대 시중은행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최근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가 급락하면서 이를 기초자산(수익률 기준 지표)으로 삼는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 대한 대규모 손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19년 해외 금리 파생결합펀드(DLF)의 불완전 판매로 홍역을 치뤘던 은행권이 또 한번 고위험 파생상품 판매로 분쟁에 휩싸일지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시중은행 중 우리은행만이 대규모 고객 손실을 피할 수 있게 돼 그 배경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시중은행에서 판매한 홍콩H지수 연계 ELS 중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판매 잔액은 총 8조4100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ELS는 기초자산 가격이 만기(통상 3년) 때까지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 약속한 수익을 지급하는 파생 상품이다. 하지만 미리 정한 수준보다 가격이 내려가면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H지수 ELS의 계약 시점은 2021년 상반기였다. 홍콩증권거래소 상장 우량 중국 국영기업들로 구성된 H지수는 2021년 초 1만~1만2000포인트까지 올랐다가 현재 50% 수준인 6000포인트까지 추락했다. 개별 상품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내년 상반기에 주가지수가 지금보다 20~30% 이상 반등하지 않는다면 주가 하락폭만큼의 대규모 손실이 예상된다.

상품 구조와 현재 주가수준을 감안했을 때 현재 상태로는 3조~4조원대 원금 손실이 불가피한 것으로 우려된다.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 판매 잔액을 은행별로 살펴보면 KB국민은행이 4조7726억원으로 가장 많고 NH농협은행(1조4833억원), 신한은행(1조3766억원), 하나은행(7526억원), 우리은행(249억원) 순이다.

수조원대 손실 위험이 커지면서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ELS 불완전판매 여부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은행들 역시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등 향후 ELS 판매를 둘러싼 갈등 발생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시중은행별 손실액은 판매 규모에 비례한다. 각 시중은행들이 타행과 비교하며 판매 규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우리은행의 손실액이 타 은행 대비 낮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은행의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 홍콩H ELS 잔액은 249억원이다. 판매 잔액이 적은 만큼 손실 규모가 작다. 가장 큰 이유는 홍콩H ELS 판매를 선제적으로 중단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특히 지난 2019년부터 판매 규모를 축소해왔는데 당시 홍콩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가 격화되자 위험성을 감지했다는 것이 우리은행 측의 설명이다. 앞서 2019년 6월 홍콩인들은 홍콩 범죄인을 중국 본토로 인도하는 범죄인 인도법에 반대하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아울러 과거 홍콩H 지수가 예측 불가능한 하락으로 고객 손실 위기가 자주 발생했다는 점도 감안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는 판매를 완전 중단했다"며 "아직 잔고가 남은 것은 고객 요청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홍콩H ELS를 판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년 하반기 만기 도래 홍콩H ELS 잔액을 합해도 전체 규모는 400억원대에 불과하다.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리스크 부서의 역할이 주효했다는 판단이다. 당시 담당 리스크 부서는 중국 및 홍콩 주식시장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H지수 변동성 확대를 우려해 중국 및 홍콩 투자상품 신규 출시를 보류하거나 비중을 축소하도록 투자상품 부서에 전달했다. 이러한 의견을 적극 수용해 H지수 편입 ELS 비중을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만기 구간 수준을 낮춰 손실을 예방할 수 있었다. 

또한 사모펀드 사태 이후 투자자 중심으로 상품선정, 판매 및 사후관리, 투자자 보호 등 투자상품 판매 프로세스를 개선했다. 판매상품 선정 시 리스크 사전협의를 의무화하고 고난도상품 선정은 이사회 승인 사항으로 프로세스 강화했다. 아울러 투자자별, 상품 위험등급별 판매한도를 별도 설정해 운용했다.

업계에서는 우리은행은 ELS 대규모 손실 때마다 제기되는 불완전판매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 요청으로 홍콩H ELS를 판매했을 경우 손실이 발생해도 책임 소재가 투자자에게 있다"며 "우리은행의 경우 타행과 비교해 판매 금액이 적다는 점도 감안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