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답이 있다”···박찬운 前인권위원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출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 교수···인권위 상임위원 3년의 기록 박원순, 탈북어민 강제송환 등 인권위 주요 사건 뒷이야기 담아 위기의 인권위, 중립성 의심받아···인권위원 자질과 소신에 대한 고민 담겨

2023-11-24     주재한 기자
신간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표지.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지난 3년간 나는 인권위의 사관(史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략) 만일 내가 이렇게 기록하지 않았다면 인권위의 공적 기록물은 남겠지만 그것이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에 대한 그 이면 이야기는 인권위 역사에서 사라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권법 학자이자 인권변호사인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찬운 교수가 2020년부터 3년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상임위원을 역임했던 경험과 소회를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취임일부터 퇴임일까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신의 일과 인권위의 주요 업무를 기록했다. 무려 200자 원고지 6000장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개인의 경험을 개인의 기억 속에 두지 않고 기록해 역사로 만들겠다는 바람이 담겼다. 그것이 고위 공직에 출사하는 사람의 태도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인권위가 맡고 있는 사안들은 특정한 누군가를 위한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은 인권위가 어떤 조직이며 무슨 기능을 해야 하는지, 인권위원은 무슨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이 시대에 바람직한 인권위원은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간추려 엮었다. 2001년 인권위 출범 이래 수많은 인권위원이 재임했지만 인권위와 인권위원에 대한 자세한 활동 기록을 책으로 남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은 곳곳에서 지난 3년간 인권위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과 이슈에 대한 생생한 뒷이야기를 제공한다. 박원순 시장 사건을 처리하면서 저자가 경험했던 고뇌, 탈북어민 강제송환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의 논쟁, 평등법 제정에 참여하게 된 과정과 경과 등이 대표적이다.

초대 군인권보호관으로서 제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인권위 내에서의 갈등도 담겼다. 저자는 이 사안들을 단순히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일기를 함께 보여주며 사건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감정과 더불어 사건의 진상과 미래를 위한 대안까지 제시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최근 인권위는 설립 이래 최대의 위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인권위원 구성원이 바뀌자, 인권위 운영과 중립성이 의심받고 있다. 인권보다는 권력의 논리를 앞세우며, 토론과 합의의 정신 대신 독단적 의견을 강조하며 강요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받는 상임위원의 행태도 언론에 오르내린다.

이 책은 최근의 인권위 사태를 걱정스럽게 보는 이들에게 이 시대에 필요한 인권위원은 어떤 능력과 자질, 그리고 소신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 교수(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가 지난 2월3일 서울시 중구 저동에 위치한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시사저널e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김지윤 PD

◇ 박찬운 교수는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 교수이자 변호사.

20대에 법률가가 되어(1984년 사법시험 합격) 4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변호사로 일하면서 양심범, 사형수, 난민, 한센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국장과 상임위원(차관급·군인권보호관 겸직)을 역임하면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차별금지법, 사형제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인정 등 인권위의 대표적 인권정책 권고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았다.

특히 2020년부터 3년간 수천 건의 진정 사건을 맡아 그중 500여 건을 인권침해로 인정해 관련 기관에 피해자 구제를 권고했고, 초대 군인권보호관으로서 군인 인권증진을 위해 노력했다.

바쁘게 살면서도 배우고 익히는 것에 남다른 관심이 있어 미국, 일본, 유럽을 오가며 전공인 「인권법」을 연구했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 보편적 인간이 되고자 노력했다. 2006년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인권 연구와 함께 대중적 글쓰기를 시도하며 사회변혁을 꿈꾸고 있다.

『인권법』 등 여러 권의 전공서와 『빈센트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를 비롯해 다수의 인문 교양서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