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주목하는 ‘유전자 가위’···韓 아직 걸음마 단계

英 유전자 가위 기술 기반 치료제 '카스거비' 최초 승인 툴젠, 'TGT-001' 임상 1상 준비···내년 글로벌 임상 가시화

2023-11-20     최다은 기자

[시사저널e=최다은 기자] 해외에서 유전자 가위를 기반으로한 치료제가 최초로 승인됐다. 유전자 편집 치료제를 이용해 의료계의 미충족 수요 해결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유전자 가위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에 관심이 쏠리는 모양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영국 의약품·건강관리 규제기구(MHRA)는 지난 16일 심각한 겸상적혈구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유전자 치료법을 세계 최초 승인했다. 유전자 편집 기술 크리스퍼(CRISPR)를 사용한 유전자 치료제 후보물질 ‘엑사셀’(성분명 엑사감글로진 오토템셀)이 ‘카스거비(Casgevy)’라는 제품명으로 영국에서 조건부 판매 허가를 받은 것이다. 카스거비는 미국 버텍스 파마슈틱컬스와 스위스 크리스퍼 테라퓨틱스가 개발했다.

카스거비는 겸상 적혈구 빈혈(SCD) 및 베타 지중해 빈혈(TDT)을 적응증으로 한다. 한번 투약으로 병을 완치할 수 있는 원숏(one-shot) 치료제다. 환자로부터 추출한 줄기세포에서 문제가 되는 유전자를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 기술을 통해 편집해 다시 환자에게 투여하면, 줄기세포가 골수에 생착해 환자의 면역 체계를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해당 치료제는 미국에서도 허가 막바지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달 전문가 자문위원회를 열고 유전자 편집 치료제 엑사셀 사용 승인에 관해 논의한 바 있다. FDA는 다음 달 초 허가 관련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유전자 가위란 선천적인 유전병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잘라내 치료할 수 있는 신기술이다. 3세대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크리스퍼-캐스9은 인간, 동식물세포의 유전자를 손쉽게 교정 또는 편집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유전자 가위는 특정 염기를 잘라내는 데 활용하는 효소의 종류에 따라 1세대부터 3세대로 분류한다. 1세대 징크핑거(ZFN), 2세대 탈렌(TALEN), 3세대는 크리스퍼(CRISPR)로 불린다. 크리스퍼는 앞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보다 효율과 정교함이 매우 높아진 유전자 편집 기술이다.

국내 유전자 가위 개발 현황./ 표=정승아 디자이너

국내에서는 툴젠, 마크로젠, 인트론바이오 등이 유전자 가위 기술을 보유 중이다. 다만 아직 초기 연구에 머물러 본 임상에 착수한 기업은 없다. 비교적 개발 단계가 가장 앞선 기업은 툴젠이 꼽힌다. 툴젠의 유전자 가위 기술이 적용된 신약후보물질은 임상 1상 진입을 앞두고 있다.

툴젠은 자체 유전자 편집 플랫폼을 바탕으로 희귀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병(CMT) 치료제 ‘TGT-001’을 주력으로 개발 중이다. 간질환(혈우병B), 습성 황반변성 치료제, 카티(CAR-T) 치료제 등의 파이프라인도 보유하고 있다. 이중 CAR-T 세포치료제로 개발 중인 ‘CTH-004’는 호주 카세릭스와 중국 순시홀딩스그룹에 각 기술이전한 후보물질이다. 카세릭스와 순시홀딩스그룹이 CTH-004에 대한 현지 글로벌 임상 1상을 주도할 예정이다.

툴젠에 따르면 샤르코-마리-투스병 치료제 TGT-001에 대한 글로벌 임상 1상 시험계획(IND) 신청을 계획 중이다. 내년 말 FDA에 1상 IND 승인 신청을 목표하고 있다. 툴젠 관계자는 “회사가 직접 주도하는 글로벌 1상은 TGT-001이 유력하다”며 “내년 말쯤 IND 신청 계획 중”이라고 설명했다.

마크로젠은 유전자 편집(CRISPR-Cas9) 기술과 관련해 2018년 1월에는 서울대학교병원으로부터 ‘약물유도 유전자 가위 재조합 백터’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2018년 3월에는 미국 브로드 연구소(Broad Institute)로부터 3세대 CRISPR-Cas9을 비롯해 총 50여 건의 크리스퍼 관련 기술을 추가로 확보했다. 다양한 연구 및 사업분야에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확대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인트론바이오는 지난 2020년 박테리오파지에 유전자 가위 기술을 도입한 개량 로봇 박테리오파지를 개발에 성공한 바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 도입과 특허 출원은 국내에서도 비교적 활발하게 이뤄지는 분위기다. 다만 여전히 임상 진입이 가시화되는 기업은 툴젠이 유일한만큼, 기술 응용 범위가 한정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DXVX, 옵티팜, 오리엔트바이오 등도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응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형질전환 동물 개발, 유전체 분석 서비스에 활용하는 정도다. 유전자 편집을 통해 환자의 치료를 돕는 개념이라기보단, 파생된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전자 치료는 환자의 DNA를 읽은 뒤, 질병과 관련된 DNA를 찾아내고 잘라내야 하는데 기존 치료제를 넘어서는 신약이 나와야 FDA 승인이 나기 때문에 신약 분포가 적은 희귀유전병쪽을 타깃한 연구가 대부분이다”라며 “희귀유전병 분야는 환자 수가 적기 때문에 임상 리스크를 의약품 가격에 반영해야 하고, 소수 환자를 대상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가격이 매우 비싸다”고 말했다.

이어 “DNA 형질을 바꿔야 하는 만큼 윤리적 심사도 받아야 해, 개발이 아주 까다로운 분야”라며 “전 세계적으로 유전자 가위 기반 치료제가 대부분 개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이유”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