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급 안했으면 어쩔 뻔···손보사, 실적 부풀리기 ‘민낯’
일부 손보사, 당국 가이드라인 '소급법' 적용 원칙대로 '전진법' 시행하면 실적 '급감'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손해보험사들이 3분기에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면서 그간 제기됐던 ‘실적 부풀리기’ 의혹이 일부 사실로 밝혀지는 분위기다. 다수의 손보사들은 원칙이 아닌 방식으로 가이드라인을 적용해 실적이 갑자기 크게 줄어드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칙대로 하면 '어닝 쇼크'가 발생할 뻔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롯데손보는 올해 3분기 누적 당기순익으로 2629억원(개별 기준)을 거뒀다. 그런데 이 실적은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을 올해 3분기 뿐만 아니라 지난1,2분기와 작년 전체 등 이미 작성한 재무제표에도 적용해 수치를 고치는 '수정소급법'을 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이드라인으로 입을 손실이 올 3분기 외 다른 시기에도 분산돼 인식되는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당국이 ‘원칙’이라고 밝힌 ‘전진법’을 적용하면 3분기에 57억원 누적 적자를 기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진법은 기존 제무재표는 그대로 두고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올해 3분기 실적에만 적용하는 방식이다. 손실 규모가 전진법으로 인해 올해 3분기에 전부 인식됐다면 적자 기업이 됐을 것이란 의미다.
금융당국이 마련한 가이드라인은 보험사들의 실적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 나온 것이다. 올해 새 회계제도(IFRS17)가 도입되자 보험사들이 장부 상 이익 규모를 키우기 위해 계리적 가정 값을 자의적으로 정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손보사들이 실손보험의 손해율 가정 값을 낙관적으로 산출해 실적을 과도하게 늘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이 계리적 가정 값을 보수적으로 잡도록 지침을 정한 것이다.
하지만 가이드라인 적용 '시점'이 문제가 됐다. 금융당국은 전진법을 원칙으로 삼았다. 하지만 일부 보험사들이 반발한 것이다. 계리적 가정값을 바꾸면 보험계약마진(CSM)과 순익이 함께 줄어든다. 그런데 전진법 적용 시 3분기 실적이 급감해 전년 동기 대비 혹은 직전 분기와 비교하면 감소 규모가 너무 커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됐다. 이에 당국은 지난 7월 올해에 한정해 수정소급법을 허용해주기로 결정했다.
가이드라인을 소급해 적용하면 이미 나온 재무제표를 다시 작성하는 것이기에 기존에 산출했던 CSM이 감소하게 된다. CSM은 보험사의 이익에 반영되는 항목이기에 기존 제무재표 상의 당기순익도 그만큼 줄어든다. 이러한 원리로 인해 전진법으로 적용하면 3분기에 한꺼번에 반영돼야 할 손실규모가 올해 1, 2분기와 지난해까지로 나눠서 인식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롯데손보의 실적이 수정소급법과 전진법 사이의 실적 차이가 큰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다만 롯데손보는 가이드라인 적용에도 CSM 규모가 크게 줄어들지 않은 점은 긍정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소급법을 적용한 롯데손보의 CSM은 2조2075억원으로 작년 말과 비교해 약 31% 늘었다. 전진법 아래에서도 같은 기간 CSM이 2조1674억원으로 집계돼 소급법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당국 방침 적용 이후에도 2조원이 넘는 CSM을 기록했기에 롯데손보는 향후 매각 과정에서 미래이익 규모를 적극 어필할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손보의 최대주주인 JKL파트너스는 최근 매각을 위해 주관사를 선정에 돌입했다.
롯데손보 외에도 대형 손보사들 중 수정소급법을 활용한 곳도 전진법과의 실적 편차는 컸다. DB손해보험은 수정소급법을 적용한 3분기 누적 당기순익은 1조2624억원이었다. 하지만 전진법을 적용하면 이보다 22%(2804억원) 감소한 9820억원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가이드라인을 적용하지 않았을 때 산출한 올 상반기 당기순익(9181억원) 수준으로 감소한다는 이야기다. 9월 말 기준 CSM은 소급법 아래서 12조5833억원, 전진법은 12조3194억원으로 2639억원의 차이를 보였다.
그간 가이드라인의 여파가 강할 것이라 예상됐던 현대해상도 적용 방식에 따라 실적이 큰 차이를 보였다. 소급법에 따른 3분기 누적 순익은 7864억원, 전진법은 5746억원으로 약 2117억원의 격차를 기록했다. CSM은 소급법 8조9037억원, 전진법 8조3919억원으로 소급법이 전진법 대비 5118억원 더 많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3분기에 가이드라인 적용 방식의 차이로 인해 보험사 실적 관련 여러 이슈들이 발생했다”라면서 “하지만 올해 4분기부터는 별다른 변동 사항이 없고 수정소급법을 선택한 손보사들의 CSM 규모도 큰 변화가 없었기에 내년부터는 재무 실적 관련된 혼란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