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실적도 충당금에 발목’···증권사 실적 회복 ‘쉽지 않네’
하나증권 3분기에만 783억원 적립···누적1834억원 다른 증권사도 충당금 늘어···선제적 리스크 관리 영향 자산 재평가하는 4분기 관련 리스크 더 커질 것으로 전망
[시사저널e=송준영 기자] 증권사들이 올해 3분기 실적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충당금이 실적을 갉아먹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어 주목된다.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와 해외 부동산 리스크가 가중되면서 선제적으로 충당금을 대거 쌓는 사례가 많아진 것이다. 충당금 적립이 통상 4분기에 몰린다는 점에서 올해 실적 부진은 더 깊어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3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들의 충당금 적립규모가 지난해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충당금은 손실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향후 손실 가능성에 대비해 회계상 별도로 분리해 쌓아두는 금액을 말한다. 자기자본 5조원 이상의 국내 대형 증권사 8곳은 이미 올해 상반기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배가 넘는 5273억원의 충당금을 쌓은 바 있다.
이 같은 추세는 3분기에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특히 대규모 충당금을 설정하면서 실적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나증권의 경우 올해 3분기에만 783억원의 충당금을 쌓았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67억원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한 수치다. 3분기 누적 기준으로는 1834억원으로 이 역시 지난해 105억원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이 탓에 하나증권은 지난 3분기 48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3분기 누적 실적으로는 143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충당금이 아니었다면 실적 감소 수준에서 끝났을 성적이었다. 하나증권 측은 “부동산PF, 해외 상업용 부동산의 익스포저(위험노출액)와 관련한 대손비용 증가와 적극적인 손상차손 반영에 따른 결과”라고 밝혔다.
다른 증권사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신한투자증권은 올해 3분기 신용손실충당금전입액으로 456억원을 계상했다. 신용손실충당금은 대손충당금에 지급보증충당금과 기타충당금을 더한 값이다. 신한투자증권은 지난해 3분기만 하더라도 신용손실충당금전입액이 34억원에 불과했다. 신한투자증권도 충당금 적립 등 영향에 3분기 18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게 됐다.
이밖에 KB증권도 올해 3분기에 163억원의 충당금을 쌓았다. KB증권이 지난해 3분기 쌓은 충당금 37억원과 비교하면 4배 넘게 큰 규모다. 그나마 KB증권은 충당금 적립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고 본업에서 실적이 뒷받침하면서 올해 3분기 연결기준 113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할 수 있었다.
충당금에 실적이 좌우되는 모습은 4분기에도 지속될 수 있다는 평가다. 고금리 상황이 지속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부동산 침체가 계속되고 있는데, 통상 기업들은 4분기에 자산 재평가 등을 통해 충당금을 몰아서 적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증권업황 악화와 맞물려 증권사의 4분기 실적이 3분기보다 더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4분기에는 증권사들의 비시장성 자산 재평가를 앞두고 있어 해외부동산 관련 우려가 부각되고 있으며 금리 변동성이 이달부터 상당히 높아져 트레이딩 수익도 감소가 불가피하다”며 “4분기 실적에 대해서는 3분기보다 눈높이를 더 낮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라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가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충당금 적립이 많다는 것은 증권사가 선제적이고 보수적으로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며 “건전성 관리뿐만 아니라 향후 관련 위기가 끝날 경우 환입액으로 돌아온다는 측면에선 오히려 빠른 실적 회복을 보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