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계부채 주범 찾기 급급한 금융당국···정책 일관성부터 돌아봐야

긴축적 통화정책과 금융당국 거시건전성 정책 엇박자 가계부채 억제 위해선 금융당국 정책 일관성 유지해야

2023-10-27     김희진 기자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가계부채가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면서 금융당국은 지금의 사태를 만든 ‘주범’을 찾기 급급하다. 금융당국이 생각하는 유력한 용의자는 은행권이다. 주요 은행들이 앞다퉈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내놓으며 가계부채 급증을 부추겼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이러한 추리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은행들이 내놓은 50년 만기 주담대 이전에 정부에서 내놓은 50년 만기 정책 상품이 있었다.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은 당초 정부가 금리 인상기에 서민들의 내 집 마련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취지로 정책금융상품인 ‘특례보금자리론’을 도입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은행들은 이런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발맞춰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을 출시했다.

금융당국이 올해 초부터 주요 은행들을 릴레이 방문하며 상생금융을 강조했던 점을 고려하면 은행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는 정부의 입김도 어느 정도 작용한 셈이다.

은행권이 내놓은 금융상품을 탓하기 이전에 금융당국의 거시건전성 정책이 중앙은행의 긴축적인 통화정책과 발을 맞췄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부터 물가 안정과 가계부채 조절을 위해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유지해 왔다. 반면 금융당국은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 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은행권에는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등 정책을 상당 수준 완화적으로 운영했다. 결국 통화정책과 거시건전성 정책이 엇박자를 내면서 가계부채 억제 효과가 희석됐다.

은행들의 대출 행태를 탓하는 것만으로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금융사의 대출 운영은 금융당국의 규제 정책과 통화정책을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정책이 긴축적 방향을 유지하지 못한 채 변덕스러운 행보를 보인다면 은행의 대출 양상도 여기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만 기대는 것도 한계가 있다. 가계부채를 억누르고자 기준금리를 무작정 인상할 경우 경기 부진 등 금융 불안이 심화될 요인이 있는 탓이다. 결국 금융 규제와 같은 거시건전성 정책이 가계대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긴축적 통화정책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급선무다.

연초 은행권에 금리 인하를 닦달하던 금융당국이 이제 와서 은행의 주담대 상품이 가계대출 급증의 주범이라고 말한다면 그 주장의 설득력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원인 제공자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남 탓하는 모양새밖에 되지 않는다.

남 탓은 쉽고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가계부채 증가에는 다양한 요인이 얽힌 만큼 단순히 은행을 주범으로 몰아가며 탓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필요한 건 금융당국의 정책 일관성이다. 정책의 일관성이 뒷받침돼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도 공조를 이룰 수 있고 은행의 대출 운영도 그에 맞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