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 관리 강화 나선 증권사···이자 잔치 끝날까
증권사들 주요 종목 증거금률 100% 상향···미수·신용 막아 신용잔고 하락 추세 속 리스크 관리에 이자 수익 감소 가능성
[시사저널e=송준영 기자]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에 놀란 증권사들이 리스크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가운데 실적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증시 거래대금 감소와 미국 국채금리 급등,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우려 등 이미 악재가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미수거래 수수료 및 신용융자 이자수익까지 감소할 수 있는 이슈가 발생한 까닭이다.
◇ ‘리스크 관리하자’···증거금률 100%로 높이는 증권사들
2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개별 종목의 위탁증거금률을 100%로 상향하는 사례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위탁증거금률은 미수나 신용거래에 필요한 증거금을 비율로 나타낸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증거금률 40%인 10만원 주식을 미수거래 하면 투자자는 매입대금의 40%인 4만원으로도 해당 주식을 외상으로 살 수 있다.
위탁증거금률을 100%로 상향했다는 것은 사실상 미수와 신용거래를 막겠다는 의미다. 증권사는 개별 종목의 위탁증거금률을 내부적인 기준에 따라 자율적으로 산정한다. 통상 신용융자 비율이 높거나 주가 변동성이 커 반대매매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종목 위주로 증거금률을 상향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
삼성증권의 경우 지난 24일 LS네트웍스, POSCO홀딩스, 레인보우로보틱스, 신성에스티, 한미반도체 등 18개 종목의 증거금률을 100%로 높인데 이어 25일에도 엘앤에프, 윤성에프앤씨, 천보, 대주전자재료, 큐렉소 등 62개 종목의 증거금률을 추가로 100%로 조정했다. 삼성증권의 공지에 따르면 이는 투자자 위험관리를 위한 조치로 증거금률 100% 지정 종목은 현금 미수 거래와 신용·대출이 불가하다.
KB증권도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에이치엔, 엘앤에프, 루닛 등 85개 종목에 대해 위탁증거금률을 100%로 상향 조정했다. 이밖에 미래에셋증권은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 POSCO홀딩스, 한미반도체, 이수페타시스, 레인보우로보틱스, 포스코DX, LS네트웍스 등의 증거금률을 100%로 올렸고 한국투자증권도 POSCO홀딩스, 인벤티지랩 등의 종목의 증거금률을 100%로 높였고 50개 이상 종목의 신용융자 거래도 중단했다.
증권사들이 연이어 증거금률 100% 상향 공시를 한 것은 이례적으로,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에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영풍제지는 올 들어 이달 17일까지 814.76% 급등했던 종목으로 같은 달 18일 돌연 하한가를 기록하며 시세조정 의혹을 받고 있다. 업계 안팎에선 영풍제지의 낮은 증거금률이 시세조종에 악용됐을 것으로 보고 있어 증권사들의 리스크 관리가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빚투 관리 강화, 수익 감소로 이어질까
증권사들이 리스크 관리에 힘을 주면서 실적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일반 주식 거래뿐만 아니라 미수와 신용거래가 활발히 나타날수록 실적에 긍정적인데, 증거금률 상향과 같이 리스크 관리에 적극 나설 경우 관련 수입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규모가 큰 신용거래 이자수익 감소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미 증시 불확실성 탓에 신용 관련 지표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3일 기준 국내 증시의 신용잔고는 18조2268억원으로 지난 7월 20조원대에서 1조원 넘게 줄었다. 여기에 증권사들이 신용거래 관리에 나서게 되면 신용잔고가 더 위축될 수 있다는 평가다.
신용거래 이자수익은 최근 수년간 증권사들의 실적을 떠받쳤던 사업 중 하나였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8개 국내 증권사가 올해 상반기 신용거래융자를 통해 얻은 이자수익은 8619억원이었다. 이는 2019년(3904억원)과 2020년(3640억원) 상반기보다는 2배 이상 많은 것이다. 이른바 ‘빚투’ 증가에 금리까지 상승한 것이 증권사 이자수익에 보탬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지 않아도 실적 저하 요인이 많았다는 점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증권사들의 브로커리지 수수료 수익과 연결되는 증시 일평균 거래대금이 지난 7월 27조원, 8월 22조9000억원, 9월 19조1000억원 10월 15조4000억원대로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시장금리의 바로미터 격인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가격 하락)하면서 채권 운용 손실 우려도 남아있다. 이밖에 해외투자자산과 부동산PF 부실도 악재로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다.
다만 리스크 관리가 오히려 손실을 줄일 수 있어 긍정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투자업계 전문가는 “신용거래가 다소 위축될 수는 있지만 신용거래가 가능한 다른 종목에 다시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증권사 이자수익은 증시 분위기에 많이 좌우된다”며 “증시가 부진한 상황에선 손실로 인식될 수 있는 미수금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투자자가 빌려간 금액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 미수금으로 쌓이고, 증권사는 이에 대비해 손실로 인식되는 충당금을 쌓아야 하는데 이 규모를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한국거래소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시장의 미수금 규모는 지난 23일 기준 1조320억원 수준으로 영풍제지 사태 전인 이달 17일 5173억원에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 초 1923억원 대비로는 5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