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AM 시행 시 EU도 타격···배출권거래제 개선보다 R&D 재원 확보가 우선”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내달 '전환기간' 시행 CBAM 품목 6개 중 철강 수출비중 93.6%···국내 철강업계 긴장 조홍종 교수 "유상할당 비중 과도하게 늘려선 안돼···연구개발(R&D) 재원 확대 우선"

2023-09-20     정용석 기자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내달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시행되면서 국내 철강업계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EU는 다음 달부터 약 2년간 전환기간을 통해 각 기업의 배출량을 보고받고, 전환기간이 끝난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탄소 관세를 부과하겠단 방침이다. CBAM에 따라 탄소세가 본격적으로 부과되면 제품을 생산하는데 탄소 배출이 불가피한 국내 철강업계의 부담은 더 가중될 조짐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CBAM 대상 품목 6개 가운데 철강이 수출 비중 93.6%를 차지하고 있어 유럽 탄소세 부담이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민간연구소 E3G, Sandbag 등에 따르면 국내 철강업계가 부담할 CBAM 인증서 구매 비용은 2026년 9600만유로에서 2035년 3억4200만유로까지 치솟는다.

일각에선 CBAM 시행에 대비해 국내 탄소배출권거래제(K-ETS)를 대폭 손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상할당 비중을 EU 수준으로 늘려 실가스 배출권 시장을 활성화하자는 논지다. 정부가 허용 배출량을 할당하는 무상할당과는 달리 유상할당은 돈을 주고 배출권을 사는 방식이다. 유상할당 비중이 높아지면 배출권 가격도 상승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탄소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정해 배출권을 발행하면 기업들은 배출량만큼 배출권을 시장에서 구매해야 하는 제도다. CBAM는 원산지의 탄소배출권거래제를 통해 배출 비용을 사전에 냈다면 이를 공제해 주는데, 국내 배출권 가격이 비싸야 유럽 탄소세를 적게 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EU CBAM에 따른 주요국 산업영향 분석 및 철강산업 대응방안' 정책세미나에서 박호정 고려대학교 교수가 토론회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정용석 기자

다만 과도한 유상할당 비중 증대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EU CBAM에 따른 주요국 산업 영향 분석 및 철강산업 대응 방안’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도하게 유상할당을 늘리거나 가격 상승을 유도할 필요가 없다”며 “CBAM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점진적인 대응을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EU에 관세를 내더라도 철강산업의 수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오히려 EU가 CBAM을 시행하면 CBAM 적용 물품인 철강 등의 역내 수입 물가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결국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EU가 가장 큰 타격을 보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한 제도가 결국 물가 상승을 초래하고 결국 탄소세 시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분석이다. 조 교수는 “EU가 탄소세 부과를 통해 얻은 이익을 기술 생산성을 위해 투여한다해도 EU의 GDP가 더욱 떨어지는 결과가 나온다”며 “수입 물가 상승 부분이 생산성 투자를 다 갉아먹어 버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비중을 늘려 기업 부담을 가중하기보다는 탄소중립을 위한 연구개발(R&D) 재원 확대가 우선이라고 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운용하는 전기로 방식은 결국 높은 전기료 등 비용 문제로 수익성이 떨어질 것으로 보고, 결국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이 철강업계 탄소중립의 핵심이 될 것으로 봤다.

다만 수소환원제철 개발은 막대한 연구비가 필요해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다. 일본은 CBAM에 대응하기 위해 수소환원제철 기술 등에 2조원에 가까운 예산을 쏟아붓는 것과 달리 우리 정부는 현재까지 120억원을 지원하는 데 그친 상황이다. 조 교수는 “수소에 대한 적극적인 산업 진층 정책과 대응이 필요하다”며 “민관 합작을 통한 대규모 펀드를 출범하는 등 이윤을 창출하고 수익을 보장해주는 형태의 투자가 진행돼야 될 것 같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CBAM 제도 초기 기업의 혼란을 막기 위한 다양한 지원에 나서겠단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는 기업들의 CBAM 규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이달 말 ‘CBAM 이행 지침서’를 공개한다. 올해 말에는 CBAM 대응 여력이 부족한 중소·중견 기업들을 위한 콜센터도 개소한다는 방침이다. 전완 환경부 기후경제과장은 “CBAM 세부 이행 법률 20개 중 아직 1개가 공개된 상황”이라며 “정부과 기업 모두 명확한 내용을 모르는 만큼 산업부와 원팀을 이뤄 대응해나가겠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