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초전도체 기술 세계 정상, 삼성 반도체처럼 브랜드화 가능”
LK-99 논란 초전도체 관심 증대···국내 연구진 상용화 진일보 기술 개발 세계 각국 R&D 지원 강화 주목···“고비용·장시일 감안 지원 법제화 필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꿈의 물질로 꼽히는 초전도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초격차의 상징이 된 삼성 반도체처럼 초전도체 또한 우리나라의 새로운 기술패권이 될 수 있단 분석이다. 다만, 연구에 고비용과 장시간이 요구된단 점을 감안할 때 정부가 긴 안목을 갖고 지원에 나서고 지원법 제정을 통해 초전도 산업 생태계를 키워나가야 한단 조언이 제기된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초전도체는 전기저항이 없어져 전류가 장애 없이 흐르고 반자성(외부 자기장과 반대방향의 자기장 형성) 현상이 나타나는 물질을 말한다. 현재 자기공명장치(MRI), 자기부상열차, 양자컴퓨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으나 영하 200도 가량의 극저온에서만 가능해 사용범위가 제한된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일상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유지하는 상온 초전도체 LK-99를 개발했단 주장이 제기됐다. 상온초전도체가 현실화되면 값비싼 저온 유지 비용이 절감돼 상용화가 가능해져 우리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현재 LK-99를 두고 상온 초전도체가 아닐 것이란 분석이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초전도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은 계속 이어져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이날 국회 의원회과에서 열린 ‘초전도 기술 개발 촉진 및 산업화 토론회’에서는 우리나라의 초전도 기술 수준이 세계 정상 수준이란 진단과 함께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긴 기간이 필요한 초전도 기술 연구개발 특성상 정부 지원이 강화되고 법제화 또한 필요하단 전문가 조언이 제기됐다.
◇국내 연구진 불안정성 극복 기술 개발···“초전도 기술 브랜드화 필요”
초전도체는 1911년 처음 발견돼 100년 이상 된 기술이지만 고비용과 기술적 장벽 때문에 현실에서 활용되는 부분이 극히 적다. 다만, 최근 초전도 관련 큰 기술적 진보를 이뤄내고 있는데 우리나라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승용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초전도체는 퀜츠 현상(작은 충격 만으로 초전도성을 잃어버리는 현상) 때문에 상용화가 어려운 것이 큰 장벽이었는데 최근 이를 극복할 기술이 개발됐다”며 “전류가 흐르다 퀜츠 현상이 나오게 되는데 노인슐레이션(퀜츠가 나도 전류가 자동으로 옆으로 바이패스(우회)되면서 타는 것을 방지) 기술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보유한 노인슐레이션 기술은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단 설명이다. 한 교수는 “그동안엔 손대면 깨지는 유리같이 쉽게 퀜츠가 나는 초전도 자석이었지만 굉장히 믿을만해 산업적으로 써볼만한 초전도체가 나왔단 의미”라며 “LK-99 정도까진 아니지만 응용 초전도체 분야에서 큰 충격을 줬다”고 했다.
퀜츠 극복 기술이 나온 이후 전세계가 초전도 기술 연구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지난해부터 약 500억원 예산을 투입해 고온 초전도 원천기술 연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약 25개 기관 200여 명의 연구자들이 참여해 5년간 운영할 계획이다. 다만, 세계와 경쟁하기엔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있단 지적이 나온다.
현재 정부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는 반도체와 같은 관점으로 초전도체를 바라봐야 한단 조언이다. 우리 초전도 기술은 이미 세계 정상에 올라있어 제대로된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제2의 삼성전자를 만들어낼 수 있단 주장이다.
한 교수는 “초전도 기술을 국가 대표 기술 브랜드화하는게 굉장히 중요하다. 삼성전자가 가진 힘은 기술력도 있지만, ‘삼성 반도체는 최고’라는 전세계적 브랜드 힘도 작용하고 있다”며 “초전도는 아직 브랜드가 없다. 우리나라가 그런 브랜드를 만들 정도의 역량이 있고, 실제 만들어낸다면 우리 산업의 30%에 달하는 제조업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초전도 기술 연구에 있어 꾸준한 연구 기반이 마련돼야 한단 조언이다. 김창영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초전도 발견 역사를 보면 60년대 이후 10년 주기를 갖고 혁신적 새로운 물질군이 발견돼 왔다”며 “현재처럼 주기가 매우 짧은 연구를 통해서는 새로운 초전도체 발견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어 “국가적 차원의 입법을 통한 체계적 지원이 절실하다”며 “지속적 연구가 가능하도록 인재 양성 및 고가의 시험 분석장비 등 인프라 구축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초전도체, 안보적으로도 중요···법제화 통해 생태계 안정성 강화해야”
상업적 측면 뿐 아니라 국가 안보를 위해서도 초전도 기술 연구지원이 중요하단 지적이다. 정연욱 성균관대 나노공학과 교수는 “초전도 양자기술의 많은 부품, 장비들은 대부분 미국 등에서 수입하고 있고, 많은 부품이 전략물자로 분류돼 수출통제를 받고 있다”며 “국제정세에 따라 기술장벽이 강화될 수도 있으며 기술단절의 위험이 언제든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초전도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선 법률 제정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미 미국과 일본은 30년 전부터 특별법과 국가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해 초전도기술 개발 촉진, 산업화를 지원하고 있다.
조전욱 한국초전도산업협회장은 “초전도 기술은 미래 융합기술의 핵심 기반 기술로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산업화의 우위를 점하고 초격차 유지를 위해 초전도산업의 핵심적 육성, 발전을 위한 법제 기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기업 상당수가 초전도 관련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기초소재인 초전도선재 제조업체로는 KAT, 서남, 삼동 등이 있고, 응용분야는 LS전선이 초전도 전력 케이블을, LS일렉트릭이 초전도한류기를 각각 개발, 생산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초전도체를 활용한 고효율 모터 개발에 주목하고 있다.
이태규 현대차 기초소재연구센터 PL은 “초전도체를 활용한 모터는 초전도 현상을 발휘하기 위한 냉각이 필요하다”며 “현재 수소에 대한 규제가 체계적으로 정립돼 있지 않아 연구가 미진한 상황이다. 연구개발 단계 수소 활용 방안에 대한 규제 완화를 해줘야 한다”고 했다.
초전도 기업인 수퍼제닉스의 심기덕 대표는 “초전도 기술 응용 제품들은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개발단계에서도 많은 자본투자가 필요한데 성공시 얻는 이익도 크다. 그러나 국내 벤처 투자여건상 수십, 수백억 투자 유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고난도인 초전도 기술의 특성을 고려한 투자방안 및 제도 수립이 필요하다”며 “정부 혹은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대규모 투자펀드 조성또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전문가들이 제시한 의견을 반영해 초전도체 응용기술 지원을 위한 법안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