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대응 놓고 정부·한은 엇박자···긴축효과 약해지나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와 한국 통화긴축 정책 엇박자 고금리에도 가계부채 증가 추세···연착륙 난항 및 리스크 확대 연체율 상승 등 부실 가능성 확대···시장 기대감 커져 긴축효과 미지수 장기적 관점서 디레버리징 지속 위한 정책당국 간 일관성 있는 공조 노력 필요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정부의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와 한국은행의 통화긴축 정책이 엇박자를 내면서 가계부채 연착륙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사상 최대 수준인 가계부채가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증가한다면 연체율 상승 등 부실 가능성이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가계부채 리스크가 점차 확대되면서 금융당국의 고민 역시 깊어지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681조6216억원으로 8월 말(680조8120억원) 대비 2주 사이 8096억원 증가했다. 지난 5월부터 5개월 연속 증가세다. 이 추세대로라면 이번 달 증가폭이 지난달 증가폭(1조5912억원)을 웃돌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늘어난 가계대출을 종류별로 세분화해서 살펴보면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6176억원 증가했다. 지난 3개월 동안 주담대는 6월 1조7245억원, 7월 1조4868억원, 8월 2조1122억원 늘었다. 5대 은행 신용대출은 3445억원 늘었다. 이달 말까지 증가세가 유지되면 2021년 11월(3059억원 증가) 이후 1년 10개월 만에 반등하게 된다. 은행권은 투자 수요가 활성화되면서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자산시장이나 자금이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흐름으로 비춰 봤을 때 전체 은행을 포함한 전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세도 4월 이후 이달까지 6개월 연속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8월 중 금융시장'에 따르면 8월 말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한 달 전 대비 6조9000억원 늘어난 1075조원을 기록하며 5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8월 증가 폭(6조9000억원)은 2021년 7월(9조7000억원) 이후 25개월 만에 최대치를 경신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가계대출은 고금리에 부동산 시장 한파가 지속되면서 7조8000억원 가량 감소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고금리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가 축소 흐름을 멈추고 다시 증가세로 본격 돌아선다면 장기적으로 금융안정은 물론 경제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대내외 복합위기로 고금리, 고물가가 장기간 지속될 경우 가계빚 부실이 금융기관 등으로 전이돼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소득 등 여러 경제 기초여건을 고려할 때 집값이 여전히 높은 수준인 상황에서 추가적인 가계 빚 증가는 경제·금융위기의 잠재위험을 키운다는 설명이다.
지난 2021년 8월부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0.5%에서 3.5%까지 3.0%포인트 끌어올렸지만 정작 통화정책 효과는 미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 동결을 유지하며 상당 기간 고금리 기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부동산 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는 매달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핵심 원인으로는 금리와 부동산 정책 간 공조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꼽힌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인상해 온 반면 정부는 부동산 시장 및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오히려 가계대출을 늘리는 엇박자 정책을 펼치면서 금리인상 효과가 희석됐다는 의미다. 가계부채를 낮춰야 한다는 당국과 한국은행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일부 정책은 오히려 가계부채 증가를 유발하는 등 엇박자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규제 완화다. 실제 최근 가계대출은 신규 아파트 매매가격과 거래량이 살아나며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급증했다. 수도권 일부 아파트 가격은 전고점에 근접하거나 경신하며 과열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정부가 전매제한 기간 등 각종 부동산 규제를 푼 영향이 컸다. 아울러 특례보금자리론과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 등 금융지원을 통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우회를 허용한 것도 가계대출 상승을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부채 감축(디레버리징)은 거의 없고 오히려 가계 부채가 늘어나는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당국은 서둘러 50년 주담대 축소 등 일부 규제에 나섰지만 이미 시장 기대가 커진 만큼 향후 긴축효과 발생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금리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과 설령 대출금리가 오르더라도 결국 집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대출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과도한 가계부채는 장기 성장세를 저해하고 자산불평등을 확대하는 등 한국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중·장기적 관점에서 디레버리징을 지속하기 위한 정책당국 간 일관성 있는 공조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