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왜] 금감원장도 ‘신뢰성’ 강조했는데···국내 ‘매도 리포트’ 보기 힘든 이유

기업이 증권사 고객인 구조 속 매도 리포트가 불이익으로 이어질 우려 투자자로부터 항의 및 협박 받거나 영업부서와 마찰 빚기도

2023-09-17     엄민우 기자
/ 사진=셔터스톡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최근 몇 년 새 주식투자자가 급격하게 늘면서 기자나 업계관계자, 일부 투자자들만 눈여겨보던 증권사 리포트들이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낯설지 않은 자료가 된 모양새인데요. 그 과정에서 특히 많이 나온 목소리가 ‘왜 이렇게 매도 분석은 없고 매수 일색이냐’는 것입니다. 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

증권사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실상 한국 주식시장에선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특수성이 있습니다. 기업은 증권사들의 고객입니다. 증권사들은 기업들을 고객으로 삼고 기업공개(IPO), 신용공여 등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또 기업들은 증권사들에게 기업 탐방 기회 등을 제공합니다.

그런데 기업에 부정적 매도 리포트를 작성하면 고객인 기업의 외면을 받을 가능성이 있겠죠? 증권사도 회사인데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는 리포트를 낸다는 것은 단순히 애널리스트 개인의 용기만으로 될 일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과거 교보증권의 한 애널리스트가 하나투어에 대한 부정적 리포트를 냈다가 기업탐방을 금지당하고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이 성명서까지 냈던 사례도 있었죠.

사실 기업이 고객이라는 점만 봐도 매도리포트를 보기 어려운 이유를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요. 이유는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자칫 매도 리포트를 냈다가는 해당 주식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거친 항의를 받아야 합니다. 단순히 항의를 하는 것을 넘어 가만두지 않겠다며 협박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타부서와의 마찰도 빚어집니다. 증권사에는 애널리스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선에서 영업을 하는 부서도 있는데요. 영업부서에서 열심히 팔아야 하는데 왜 리포트를 부정적으로 쓰냐며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이처럼 애널리스트가 부정적인 리포트를 쓰기 위해선 기업고객이 떨어져 나갈 각오를 하면서 주식투자자들의 협박을 받고 영업부서와 싸워야 하는, 3중고를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현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장에선 ‘밈투자’가 늘어나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유튜버들의 의견이 힘을 받는 상황이라 애널리스트들이 이탈하거나 그만두는 경우도 많아진다고 하네요.

물론 매도 리포트를 낸다고 해서 무조건 개념 있는 리포트이고, 매수 의견은 잘못됐다는 것이란 생각도 잘못된 것입니다. 사실 모든 리포트는 하나의 의견일 뿐이죠. 중요한 건 일단 유독 한국이 매도 의견이 잘 나오지 못하는 ‘현상’이 실제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것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좀더 신중하고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애널리스트 개개인에게 ‘욕을 먹어도 사자의 심장으로 리포트 쓰면 되는 것 아니냐’라는 식으로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3월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와 만난 자리에서 리서치의 신뢰성을 높여 달라고 요청하고, 금감원에서 독립 리서치 제도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 기회에 기업과 투자자, 증권사에게 모두 건강한 투자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까요?